▼월가의 투자전문가 가운데는 연말에 1백만달러(약 13억원) 이상의 보너스를 받는 사람이 1천명을 넘고 10만달러 정도는 집계가 안될 만큼 흔하다. 대당 3억원이 넘는 부가티와 페라리 등 최고급 스포츠카가 물건을 대지 못할 정도로 팔려나가고 벤츠나 BMW매장은 연인과 함께 쇼핑에 나선 젊은 펀드매니저들로 북적인다. 인근 고급식당은 11월 초에 이미 연말까지의 예약이 끝난다. 그런 분위기는 뉴욕 주가가 폭등세를 보였던 작년말 극에 달했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달라졌다. 1년 전 시작된 아시아의 경제위기가 올 가을 뉴욕 자금시장에 상륙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타격은 세계 최대 헤지펀드 중 하나인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로부터 시작됐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포함해 금세기 최고의 경제해결사들로 구성됐다는 이 회사가 지난달 몰락하면서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고유의 투자방정식까지 개발해낼 정도로 똑똑했던 이 회사는 지나치게 과학적 투자를 고집한 나머지 아시아위기라는 변수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 여파로 월가에는 삭풍이 불기 시작했다. 보너스는커녕 목이 달아날까 전전긍긍하는 것이 요즘 풍경이다. 월가를 상징하는 메릴린치투자사가 3천4백명의 감원을 선언하자 ING베어링스와 뱅커스트러스트 등 기라성같은 금융기관들도 뒤따르고 있다. 혜성과 같이 나타났던 투자전문가들이 별똥별처럼 지고 있다. 경제가 얼마나 깨지기 쉬운 존재인지를 확인해주는 사례다. 이미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일 아닌가.
〈이규민 논설위원〉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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