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조치에서는 반세기 넘게 걸어둔 빗장을 풀면서 개방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여론을 수렴한 점이 눈에 띈다. 특히 영화와 비디오의 경우 중요 국제영화제 수상작이나 공동제작영화로 개방을 제한한 것은 충격 최소화와 함께 수준 높은 문화를 우선 개방해야 한다는 여론에도 부합하는 조치로 평가된다. 만화의 즉시 개방은 이미 음성적으로 유입된 일본만화가 국내 만화시장의 47%를 점하고 있는 게 현실이고 보면 개방에 따른 충격은 사실상 없을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앞으로 일반 상업영화와 가요공연 음반을 포함해 게임용 소프트웨어 등 대중적이고 상업성 짙은 분야들을 개방해야 할 때 본격적으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일부 관련업자들은 정부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방침이 알려지면서 부터 판권확보를 위한 과당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보도다. 상대인 일본의 대중문화산업 관계자들이 보인 신중한 자세와는 대조적이다. 80년대말 당시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의 문화를 개방할 때 앞다퉈 몰려가 개런티 과당경쟁을 벌였던 악습이 재현될 듯한 분위기다. 그런 전철을 다시 밟아서는 안된다.
오랜 기간 보류해 왔던 사안을 개방하는 만큼 어느 정도의 부작용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최소화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퇴폐 저질문화의 유입을 여과하고 국내 관련사업이 일본문화상품의 공략에 무너지지 않도록 충분한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 문화상품의 일본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적극적인 대책수립도 긴요하다.
국경없는 지구촌시대를 맞아 모든 것이 개방되고 무한경쟁시대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문화의 교류는 상호이해를 위한 필수조건일 수밖에 없다. 일본의 문화 중 양질의 것은 슬기롭게 받아들이고 소화해 우리 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재료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사회 일부에 남아 있는 일본문화에 대한 감정적 거부감도 자제해야 하고 관련업계의 과열된 분위기도 억제해야 한다. 한마디로 의연한 대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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