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탠더드시대 34/지주회사제]「집단경영 모범」

  • 입력 1998년 10월 21일 19시 19분


일본의 히다치제작소가 17일 획기적인 사업체제 전환계획을 발표했다. 전기전력 정보미디어 가전 등으로 구성된 5개 그룹을 품목별로 11개 독립회사로 재편하겠다는 것. 이들 회사의 지분을 갖고 경영을 지휘하는 지주회사를 2000년까지 만들 계획도 공개됐다.

일본의 도카이(東海)은행과 아사히(朝日)은행도 지난달 말 상호제휴를 발표했다. 양 기관은 중복점포를 통폐합하고 별도의 지주회사를 만들어 그 아래 각 사업부문별 자회사를 둔다는 것이다.

주요 자본주의국가 가운데 순수지주회사를 금지해온 나라는 한국 뿐이다. 일본은 지난해 6월 그 빗장을 풀었다. 왜 그랬을까.

“일본의 제조업체는 수익이 계속 악화되는 상태에서 비대(肥大)사업부문을 수월하게 구조조정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특히 금융권은 외국금융자본에 대항해 합병 등으로 맞서면서 다양한 사업영역을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지주회사제도 도입이 절실했던 것입니다.”(이홍배·李鴻培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원)

지주회사는 이미 서구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수십년전부터 정착돼온 기업지배구조다. 우리 귀에 익숙한 세계 굴지의 기업들은 대부분 지주회사로 봐도 무방하다. 미국의 GE IBM 포드 프록터앤드갬블(P&G) 펩시, 독일의 화학그룹인 훽스트 바이엘 듀센,영국의 글락소….

미국의 보스톤컨설팅그룹은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지주회사가 이처럼 널리 자리잡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주회사 방식은 구조조정시 유연한 대응을 가능하게 하며 주주를 위한 가치 창출을 가능하게 한다. 급변하는 환경변화에 가장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기업구조인 셈이다.”

재벌구조는 효율적인 대처가 안될까.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통합법인 설립과정을 보면 양 재벌은 끝내 자율적 합의도출에 실패했다. 오너 입장에선 자신의 기업을 퇴출시키거나 남에게 넘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다른 계열사의 빚보증을 해소해야 하는 등의 작업도 만만치 않다.

지주회사 경영진은 ‘자리를 지키기 위해’ 철저히 주주의 수익을 올리는 경영을 할 수밖에 없다. 부실기업은 과감히 퇴출시키고 수익성 있는 기업은 과감히 사들이게 된다. 자회사의 지분만 처분하면 되므로 기업매각과 퇴출도 간편하다.

여러 사업부문을 거느리고 있는 대기업에서 한 사업부문의 부실은 곧 회사 전체의 부실로 연결되며 우량 사업부문에도 충격을 준다. 지주회사는 자회사의 사업실패에 대해 출자범위 내에서 책임을 진다. 최악의 경우 그 사업부문만큼의 손해 뿐이다.

지주회사는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는데도 유리하다. 미국 제네럴모터스(GM)의 경우 해외투자시 주로 지주회사에 투자한다.

“전자 금융 등 부문별 소그룹제도를 운영중인 삼성그룹을 비롯해서 5∼6개 그룹이 외자유치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지주회사 도입을 준비중입니다. 그룹총수나 주력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주식을 현물출자해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여기에 외자를 유치하는 방식이죠.”(김학현·金學鉉 공정거래위 기업결합과장)

또 자회사는 사업에만 전념하고 연구개발 등은 지주회사가 맡는 방식으로 경영효율을 높일 수도 있다는 점도 지주회사가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잡게된 이유. 90년에 순수지주회사를 도입한 독일의 벤츠가 그런 사례다. 자동차 뿐만 아니라 항공 전자 등으로 사업영역을 계속 확장하던 벤츠는 경영전략 연구개발 기술개발 재무 인사업무 등과 같은 공유부문을 지주회사에 집중시키고 자회사는 사업에 전념하도록 했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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