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연철/간송선생의 문화재사랑

  • 입력 1998년 10월 21일 19시 48분


서울 성북동 버스종점에서 성북초등학교 정문으로 가다보면 정원 안쪽으로 고풍스런 건물 한 채가 보인다. 입구에는 한눈에 보아도 범상해 보이지 않는 석사자(石獅子) 한쌍이 내방객을 맞는다. 고풍스러운 건물은 사립이지만 국립중앙박물관과 함께 우리 문화유산의 보고로 손꼽히는 간송미술관 소유의 유물이 수장돼 있는 보화각이다. 일제시대 우리문화재 최고의 컬렉터였던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선생이 수집한 유물을 보관하기 위해 당시로서는 최고급으로 지었던 건물이다.

▼지금 간송미술관에서는 1938년 지어진 보화각의 설립 6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11월1일까지)이 열리고 있다. 우리 문화유물의 정수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특히 이번에 전시되는 유물들은 입수할 때마다 간송의 문화재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는지를 알게 해주는 일화가 얽혀 있는 작품들이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숙연한 마음까지 갖게 한다.

▼국보 중의 국보로 꼽히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68호)이 대표적 사례다. 35년 가을 집 한채값이 1천원인 당시 일본인 골동상으로부터 2만원에 구입한 고려청자의 백미(白眉)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다른 일본인 골동상이 뒤늦게 이 청자의 가치를 알고 두배를 주겠다며 되팔 것을 간청했지만 간송은 문화재 수집사에 길이 남을 명언으로 거절했다.

▼“운학문매병보다 더 좋은 물건을 가져오고 이것은 본금(원시세)으로 가져가시지요. 저도 대가는 남만큼 치를 용의가 있습니다.” 간송의 우리 문화재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간송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일본에 가서나 볼 수 있을지 모를 1백여점의 명품을 대하며 새삼스레 우리 문화재에 대한 그의 고귀한 애호정신을 느끼게 된다.

임연철<논설위원〉ynch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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