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저질 국정감사

  • 입력 1998년 10월 28일 19시 13분


국정감사가 엉망이다. 국감(國監)이 시작된 지 일주일 남짓 지났으나 하루라도 제대로 됐다는 보도는 드물다. 회의가 열리자마자 고함과 삿대질이 오가고 이내 정회되는 일이 허다하다. 정책감사로 치르겠다던 여야의 다짐은 온데간데 없고 날마다 정쟁이 국감을 압도하고 있다. 여야 정권교체 이후 첫 국감이라지만 예년보다 더 황폐해진 것으로 비친다.

무엇보다 의원들의 천박한 언어와 추태가 국회에 대한 실망을 넘어 환멸을 낳고 있다. 여야 의원들이 욕설을 주고 받은 것으로도 모자랐는지 엊그제는 막말을 내뱉으며 멱살을 잡고 난투극까지 벌였다고 한다. 술을 마시고 국감장에서 자는 의원, 증권시장의 근거없는 소문만으로 전임 대통령의 거액 비자금 보유를 주장한 의원도 있다. 참으로 민망하고 한심하다. 이제는 그런 작태를 확실히 바로잡을 때도 됐다.

의원이 원내발언에 대해 면책특권을 갖는다고 해서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지도층으로서 상응한 품위가 요구되고 정치적 책임이 따른다. 특히 타인에 대한 모욕, 회의장 질서문란 행위, 타인의 발언에 대한 방해 등은 국회법에 명시적으로 금지돼 있다. 아울러 국회법은 그런 언동을 한 의원을 징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런 불법적 저질언동이 별다른 제재도 받지 않은 채 횡행하고 있다. 국회법대로 의장은 문제된 의원들을 직권으로 윤리특위에 회부하고 윤리특위는 소정의 징계절차를 밟아야 한다.

의원징계 규정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여야의 관행적 담합 때문이다. 그러나 여야가 규정을 피하고자 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피해지는 시대가 아니다. 여론은 정치의 타락을 더 이상 감내하지 못하고 저질의원 퇴출을 요구하고 있다. 의원들의 추태를 시정하는 일은 국회의 자구(自救)를 위해서도 불가피하다. 국회가 스스로 하지 않으면 시민들이 나설지도 모른다. 정치개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의원들의 언동을 정화하는 일이 국민이 체감하는 정치개혁의 출발일 수 있다.

국감 파행에는 여야 지도부의 책임도 크다. ‘세풍’과 ‘총풍’을 부풀리거나 반전시키려는 정략이 국감을 엉망으로 만든 측면이 있다. 여야 모두 국감을 정략의 방편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게다가 여당은 무조건 정부를 감싸고 야당은 준비도 없이 정부를 몰아세우다보니 서로 격렬해진다. 여당은 정부비호로 여당의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국감은 야당에 대한 여당의 견제도구가 아니라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감시장치다. 야당 또한 정확한 자료를 갖고 정부를 추궁해야 한다. 야당이 왜곡되거나 단편적인 지식으로 큰소리나 치던 시대는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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