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환란」과 역사교과서

  • 입력 1998년 10월 28일 19시 13분


교육부가 내년에 배포될 중 고교 국사교과서에 김영삼(金泳三)정부편을 기술하며 환란책임 문제를 포함시킬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보도된대로 ‘국제경제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외환파동이라는 경제적 위기를 초래했다’는 식으로 수록한다면 재고돼야 한다. 아직 문구를 확정하지 않았다는 당국의 해명이지만 사실 기술을 넘어 평가가 포함된 내용이라면 시기상조라고 할 수밖에 없다.

우선 김영삼정부를 현시점에서 ‘역사’로 보아야 하느냐는 점부터 논란의 소지는 충분하다. 더구나 평가를 하려면 객관적인 기준이 있어야 한다. 현재 외환위기와 관련된 김영삼정부의 경제관련 고위책임자들은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대법원 확정판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다. 국회 경제청문회에서도 IMF상황이 초래된 원인을 놓고 여야간에 치열한 공방이 예상되고 있다. 새 국사교과서는 내년 3월에 배포되는 만큼 그때까지 어떤 결론이 내려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김영삼정부가 환란과 IMF사태를 초래한 데 대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오늘의 위기가 초래됐다’고 기술한다면 이는 사태를 지나치게 단순화해 보는 시각일 수 있다. 오늘의 경제위기는 김영삼정권의 대처미흡에다 70년대 이래 누적된 압축성장의 부작용 등 복합적 원인에서 비롯됐다는 설득력있는 견해도 있다.

역사교과서는 논란의 여지를 최소화하지 않으면 교육현장에서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파문을 일으키는 만큼 신중한 자세로 기술해야 한다. 역사학자들이 최소한 30년을 기다려 역사적 평가를 내리는 이유도 사건이 하나의 단락을 짓지 않은 상황에서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중인 사실을 ‘정치적’으로 평가했다가 낭패를 본 대표적인 사례가 유신(維新)에 대한 국사교과서의 기술이다. 75년 교과서는 ‘민족의 염원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하루 속히 이룩하고 번영된 조국을 이룩하기 위하여 10월 유신을 단행하고 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요즘 교과서에는 ‘강력하고도 안정된 정부를 세운다는 명분아래 장기집권의 길을 마련했다’는 비판적 내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것이 역사다.

국사교과서에 현대사 항목이 있는 만큼 김영삼정부편을 둘 수는 있을지 모른다. 또 6·25 이후 국가 최대위기로 일컬어지는 IMF사태를 기록하는 것도 불가피할지 모른다. 그러나 IMF사태의 원인을 다분히 정치적으로 평가해 기술하는 것은 성급하다. 객관적 사실만 기술하고 평가는 후세사가들에게 맡겨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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