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보호실의 인권유린

  • 입력 1998년 10월 30일 19시 09분


경찰서 보호실이 불법감금 장소로 악용되고 있다는 보도다. 본보 취재진이 28일밤 서울시내 31개 경찰서 보호실을 조사한 결과 3명중 1명꼴이 정당한 이유없이 갇힌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경찰서 안에 인권을 유린하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권선진국을 지향하는 정부의 의지를 무색케 한다. 즉결피의자를 본인 의사에 반해 보호실에 ‘보호조치’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구금이 관행상 묵인되고 있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즉결피의자의 보호실 감금은 법률과 대법원 판례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 다만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술취한 사람이나 정신착란자 자살기도자 미아 등 응급조치를 요하는 특별한 경우에 한해 보호조치할 수 있게 돼 있을 뿐이다. 보호실이 인권침해 현장으로 지적된 것은 어제 오늘이 아닌데도 아직까지 말끔히 시정되지 않고 있으니 경찰의 인권의식 수준을 알 만하다. 인권에 크고 작음이 있을 수 없다. 사소한 듯하지만 즉결피의자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고는 어떠한 인권의 보호도 한낱 헛구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즉결피의자의 보호실 감금은 도주를 막아 이튿날 즉결심판소 출석과 구류형 집행을 담보하기 위한 편법이다. 심지어 주소와 신분이 확실한 사람까지 감금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즉심 선고결과를 보면 그렇게까지 무리한 보호조치가 필요없다. 지난해 즉심에 회부된 피의자의 96.6%가 벌과금을 선고받았고 구류형은 겨우 3%에 불과했다. 벌과금을 선고하는 경우에는 피의자가 즉결심판소에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현행 불출석심판제도를 보다 폭넓게 활용해도 큰 문제가 없다.

경찰서의 즉심업무는 평일 주간의 경우 주무부서장인 방범과장이, 휴일이나 야간에는 상황실장이 책임지는 이원화 구조로 돼 있다. 이때문에 훈방이냐 즉심청구냐, 일단 귀가냐 보호조치냐 하는 분류심사에 일관성과 형평성을 잃을 소지가 있다. 가령 경찰내규상의 훈방대상인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자’ ‘고의성이 없는 자’ ‘기타 특히 훈방사유가 있다고 인정하는 자’의 해석이 자의적일 수 있는 것이다. 그 판단을 윤번제로 근무하는 상황실장에게도 맡기다 보니 전문성이 모자라 심사결과가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비리가능성마저 없지 않다.

즉결피의자를 적발하면 범죄사실만 조사한 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단 귀가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심사는 이튿날 주무과장인 방범과장이 실시해 결과를 전화 등으로 알려줘도 무방하다고 본다. 보호조치의 최대한 억제와 심사권 행사자의 일원화 등이 인권침해를 막는 한 방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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