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의 첫 우주궤도비행은 다섯시간이 채 못 걸렸다. 이번에는 꼬박 9일간 우주선에서 보내야 한다. 우주공간은 초저온의 진공상태여서 근육이 무기력해지고 에너지소모가 커 강인한 체력이 필수다. 또 발사될 때 엄청난 가속도 압력으로 젊은 비행사들도 잠시 혼수상태에 빠진다. 이런 고통스러운 일에 자원하면서 글렌은 자신의 안전보다도 의학실험의 성공을 더 기원한다고 말했다.
▼우주개발은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경쟁으로 발전돼온 측면도 있다. 초기 인공위성과 우주선 발사에서 앞선 쪽은 소련이었다. 소련은 57년 개를 태운 스푸트니크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데 이어 61년엔 유인우주선의 궤도비행에 성공했다. 이때 미국은 마치 냉전에서 패배하기라도 한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로부터 1년 후 우주궤도 비행에 성공한 글렌이 미국의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시켜 주었다.
▼특히 미국의 노년층은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글렌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CBS가 은퇴한 TV앵커 월터 크롱카이트를 초빙해 생중계를 맡긴 것도 원로의 의미를 되새겨준다. 미국민이 대통령보다도 크롱카이트나 글렌을 더 영향력있는 인물로 꼽는 일은 다반사였다. 글렌의 장도 현장에 나타난 클린턴대통령이 인기편승 의도 아니냐는 비판을 받은 것도 그래서다.
김재홍<논설위원〉nieman9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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