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곽병선/국가관리 수능시험의 문제점

  • 입력 1998년 11월 18일 20시 51분


18일 실시된 9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갑자기 기온마저 영하로 곤두박질쳐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의 마음을 더욱 춥게 만들었다. 수험생들은 시험을 마친 뒤 각자 자기 예상점수를 가늠해보고 웃고 울었을 것이다.

이번 시험관리에도 예외없이 국가가 총동원되었다. 관공서는 물론 일반 회사의 출근 시간도 늦춰지고, 듣기평가 시간중에는 비행기 이착륙조차 금지됐으며, 시험 끝나기가 무섭게 매스컴의 초점이 대학별 합격 예상 점수에 모아졌다. 가히 ‘시험 공화국’이라 부를 만하다.

수험생의 장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시험을 ‘고부담시험’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제 수학능력시험의 가치와 그 정당성을 심각하게 검토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고부담시험 때문에 질적 변화없이 해마다 암기교육만 되풀이되는 현실과, 그러한 교육으로 길러진 한국인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삶의 양상을 볼 때 이런 국가관리 고부담시험의 근본문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지금쯤은 누구나 성찰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전인적 능력 파악못해 ▼

한 나라에서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야심찬 교육개혁안이 아니라 바로 고부담시험이라는 것이 교육학에서 최근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입장이다. 고부담시험은 한 사회가 그 구성원들에게 사회적 역할을 배분함에 있어서 선발 기준으로 여기는 중요한 가치와 성취 수준이 무엇인가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 선발을 통해서 수험생의 진퇴를 실제로 결정해주기 때문이다. 고부담시험이 교육의 목적 내용 방법을 결정해버리는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의 수능은 교육적 타당성을 크게 잃고 있다. 수능이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점은 시험 결과의 객관성과 공정성이다. 선발이라는 기능만을 놓고볼 때 이보다 더 효율적인 시험은 없다. 그러나 수능은 필기시험 점수에 대한 맹신, 학교에 대한 불신, 등급주의적 사회역할관 등 잘못된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필기시험 점수는 정답요령에 밝은 수험생의 암기력을 보여줄 수는 있어도 전인적 능력을 나타내지 못한다. 시험의 국가관리는 학교를 시험준비기관으로 피동화시킨다. 학교와 교사를 신뢰해야 할 필요성이 없다. 점수 제조기로 이용가치가 있으면 족하다. 과학고 외국어고가 특별히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점수에 대한 맹신은 점수로 사람 대학 직업의 등급을 매기는 왜곡된 가치체계를 만들고 있다. 필기시험의 치명적 결점은 답안지에 예정된 정답을 요구하는 시험의 성격 때문에 지적 생성력이나 거리낌없는 상상력을 잴 수 없다는 것이다.

미래의 지식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들은 바로 이런 창조력을 가진 사람들이지 기존지식이나 암기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국가관리 수능 시험으로 인해서 잃는 것이 너무 크고 심각하다. 그것은 총체적으로 교육을 잃어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수능시험에 학교 교육이 언제까지나 끌려가도록 할 수는 없다. 수능시험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입제도 개혁이 있어야 한다. 다행히 교육부는 2002년부터 무시험 전형이 가능한 대입제도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무엇보다 서울대가 무시험 전형제 도입을 공식 발표한 것은 고무적이다. 학생 개개인의 인간됨과 실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학생을 직접 오랫동안 지도한 선생님들이다.

학생 및 학부모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학교와 선생님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전문성 신장과 스승으로서의 헌신이다. 학교 사회 정부 모두가 협력하여 새 제도를 성공시켜야 할 것이다.

▼ 무시험전형 정착돼야 ▼

새 대입제도에서도 수능은 보완적 기능을 위해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보다 더욱 쉽게 출제해야 할 것이며 새 대입제도가 적용되는 2002년 이후에는 순수하게 학업적성시험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수능 이외에도 우리 사회에는 필기시험에 의존하여 국가 동량을 선발하는 고부담시험들이 있다. 판검사 고급관리 신규교원을 선발하는 정부 관리의 각종 고시가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격변하는 복잡한 사회 환경에서 매 순간순간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 할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자질을, 암기력에 의존하는 필기시험으로 판가름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없다. 수능을 검토한 것과 같은 논리로 이들 시험제도도 혁파되어야 할 것이다. 필기시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 우리는 창조력과 상상력을 기르는 열린 교육의 지평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곽병선(한국교육개발원 원장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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