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이너 리그(29)

  • 입력 1998년 11월 21일 19시 58분


반정(反政)⑥

카피라이터는 일 자체로도 소모적인 면이 많은 직업이었다. 직장생활이란 물론 벚꽃나무 아래 앉아 동자에게 술상을 내오게 하고 산 너머 구름을 이윽히 완상하는 음풍농월이 될 수는 없다. 그런 것을 모를 내가 아니었다. 어떤 일이든 중심을 향해 뛰어들기보다는 한 발짝 물러나 논평만 함으로써 그 일의 파장에서 일정 거리를 유지해왔던 나의 현실 감각은 실로 매섭다 못해 비범한 구석까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광고라는 일의 강도와 속도는 내가 예상한 것의 이십 배는 되었다. 카피라이터의 최대의 덕목은 ‘튀는 것’ ‘뜨는 것’처럼 가벼움이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하려는 일이란 허공에 잠시 떠 있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서 두 팔을 바둥거리는 것에 불과했다.

팀장은 내 카피를 여지없이 내던지곤 했다.

“이것밖에 안 나와? 사람 머리는 다 비슷한 거야. 경쟁사 카피라이터들도 여기까지는 다 생각한다구. 그 이상을 만들어야지. 내가 말했잖아. 먼저 열 개의 카피를 만든 다음 그것을 다 버려야 한단 말야. 그리고 그때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하랬잖아. 영혼까지 쥐어짜라구.”

저는 영혼이 없는데요,라고 대꾸하면 그는, 그럼 염통이라도 떼어서 쥐어짜! 라고 소리쳤다. 그는 영혼이란 말을 너무 좋아하여 ‘여자와 악마에게는 영혼이 없다’는 카피를 썼다가 여성단체에게 혼쭐이 난 적도 있다 한다. 실무에서 손을 뗀 지 오래였지만 팀장은 광고대회에 출품할 때는 언제나 내 이름이 아닌 자기 이름을 썼다. 내 카피가 딱 한 번 상을 탄 적이 있었다. 상을 받은 카피라이터는 물론 팀장이었다. 그 팀장조차도 이사까지는 올라가지 못하고 퇴직했다. 혹 디자이너 출신이라면 모를까 카피라이터 출신으로서 간부직에 오르기 전에 머릿속을 송두리째 강탈당하지 않은 인간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유능한 카피라이터는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최고가 되지 못할 바에는 최선을 다하지 않음으로써 자존심을 지켰던 것이다.

나는 일단 부딪치고 보는 조국과는 달랐다. 결과가 보장되고 완전히 조건이 갖춰져야만 뭔가 시작하는 성격이었다. 그러다보니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승주처럼 건성으로 가볍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자기 인생을 해독해 보려는 긴장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기에는 나는 식견과 통찰이 너무 뛰어났다. 결국 나는 ‘안 해서 그렇지, 하면 잘 할 텐데’라는 말을 듣는 걸로 자족했다. 한마디로 이류라는 뜻이었다. 일류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경계심을 살 필요가 없었으므로 이따금 나는 그들의 친구가 되기도 했다.

김부식도 그 중 하나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우리 반 1번이었던 그는 별명이 꼬마병정이었다. 교련시간이면 짧은 팔다리를 뻗쳐가며 총검술 동작을 너무 열심히 하곤 했기 때문이었다. 교내 마라톤 대회 때에도 그는 거의 꼴찌였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늘 놀림을 받아 친구도 없고 내성적이던 그는 그러나 그때 이후 자나깨나 마라톤을 계속해온 덕분에 지금은 선두대열에 끼어 있었다.

<글: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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