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허영/「제2건국운동」의 문제점

  • 입력 1998년 12월 1일 19시 25분


김대중(金大中)정부가 집념을 가지고 추진하고 있는 제2의 건국운동이 정치권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야당은 제2의 건국운동이 정계개편을 지향한 김대통령의 정치적인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강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래서 국회의 내년도 예산심의과정에서 제2의 건국운동지원예산 20억원을 삭감하기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도 제2의 건국운동은 기초지방자치단체에 이르기까지 그 지부 결성을 추진하면서 점점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어 나가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의 지부 결성에는 지방공무원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또 호남지역에서는 이 기구에 참여하려는 사람이 줄을 서지만 영남지역에서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 정부주도 추진 부적절 ▼

우리는 지난날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럴듯한 구호를 내걸고 펼치는 여러가지 국민운동을 많이 경험했다. 그렇지만 구호와 명분처럼 유종의 미를 거둔 경우를 별로 기억하지 못한다. 박정희(朴正熙)정권이 추진한 새마을운동은 우리 농어촌의 근대화를 촉진시킨 점에서 하나의 예외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새마을운동도 그 초기에 성과를 올렸을 뿐 시간이 흐르면서 새마을운동조직이 여당의 선거운동에 이용되는 등 정치운동화함으로써 본래의 의미와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김대중정부가 추진하는 제2의 건국운동은 크게 보면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자는 새출발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미증유의 경제난국을 맞아 우리 국민이 과거의 폐습을 타파하고 모든 면에서 새롭게 출발함으로써 대한민국을 희망찬 나라로 다시 세우자는 것이라면 결코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다만 그런 목적의 새출발운동이라면 그것은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고 정부주도로 추진할 일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새로운 나라로 건설하자는 취지가 주로 국가경영의 비효율성을 시정하고 사회영역의 도덕적인 타락 내지 해이를 추방하자는 것이라면 정부가 주도해야 할 부분과 사회의 자율영역에 맡겨야 할 일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새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정부주도로 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건국후 50년 동안 나라를 이 지경으로 부패하고 비효율적으로 만든 잘못된 여러 법제도부터 과감하게 개혁하는 일이다. 정부와 여당이 이 부분을 책임지고 실천한다면 제2의 건국은 우선 튼튼한 바탕이 마련되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비효율성의 상징으로 평가되는 정치제도의 개혁을 비롯해 행정제도를 능률적인 체제로 개혁하는 일부터 정부여당 주도로 마무리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러고 나서 사회영역의 도덕적인 재무장은 사회지도층부터 솔선수범하는 가운데 여러 시민운동단체들의 자율적인 사회운동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회영역에까지 정부가 관여한다면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제2의 건국이 정부의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고 어차피 국민의 참여와 생활개혁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 일이라면 지금처럼 모든 것을 관주도로 조직하고 운영하는 형태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야당이 의혹의 눈길을 던지고 일부지역의 국민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지나친 과민반응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제2의 건국운동을 지금의 형태로 추진하는 것은 용두사미로 끝나는 예산낭비일 가능성이 크다. 나라와 국민의 살림살이가 어려운 판에 혈세를 아끼는 의미에서도 공룡조직과 전시용 행사 위주의 운동은 자제해야 한다.

대통령이 야당과 힘을 합해 우선적으로 추진할 일은 정치권부터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다. 그리고 정치제도의 개혁입법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최우선적으로 처리하는 일이다. 그것은 제2의 건국의 출발인 동시에 국민의 도덕적인 재무장을 위한 호소력있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 정치제도 개혁 힘써야 ▼

지금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정치패러다임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런데도 모든 국민이 한결같이 바라는 정치권의 개혁은 이런저런 이유로 뒤로 미룬 채 무엇을 어떻게 새롭게 출발하자는 것인가. 행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부패사슬을 끊기 위한 부패방지법 내부고발자보호법 돈세탁방지법 공직자윤리법 등 제2의 건국에 필요한 입법에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어떻게 제2의 건국을 하겠다는 것인가.

제2의 건국운동본부의 전국적인 지방조직이 급한 것이 아니다. 새롭게 출발하기 위한 법제도의 개혁과 정비부터 서둘러야 한다.

타고 갈 기차도 마련하지 않은 채 승객부터 먼저 모집하는 구시대적인 방법으로는 제2의 건국은 실현될 수 없다. 하물며 야당의 주장처럼 정치적인 목적의 발상이라면 제2의 건국운동은 더더욱 실패할 수밖에 없다.

허영<연세대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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