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규민/뇌사인정 판단문제

  • 입력 1998년 12월 2일 19시 27분


뇌사자의 장기적출 허용법안이 확정되자 사망기준에 대한 논란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사망의 정의에 대해서는 법조계 종교계 의료계의 목소리가 제각각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해온 문제이기도 하다. 호흡이 멎은 시간이 기준이었다가 인공호흡법이 알려지면서 심장이 멎었을 때를 사망으로 보았다. 전기쇼크로 심장활동의 재개가 가능해지면서 현대의학에서는 회생할 수 없는 뇌사의 순간을 삶과 죽음의 경계로 삼아왔다.

▼그러나 4월 미국의학계의 한 실험이 성공하면서 여기에도 문제가 생겼다. 두마리 원숭이의 몸과 머리를 맞바꾸는 이식수술이 성공한 것이다. 클리블랜드대학 신경외과팀은 수술 후 “뇌사상태의 사람과 뇌만 살아 있는 사람의 머리교체이식도 가능하다”고 기염을 토했다. 삶의 시간적 영역이 넓어진 것이다. 앞으로 의학기술이 발전하면서 논쟁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뇌사허용법은 이식에 필요한 장기의 공급량 확보에 큰 목적이 있다. 2주일이면 끝날 생명, 장기라도 건지기 위해 인위적으로 생존기간을 단축하자는 것은 공리주의적 발상이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에게 새 생명을 준다는 차원에서는 인도주의적 결실을 낳는다. 뇌사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판단오류나 판단남용의 문제는 남는다. 이 위험을 완벽하게 피할 수 없는 게 인간의 한계다.

▼미국 영국 노르웨이 등 선진 16개국이 이미 이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일본도 작년 10월부터 동일한 법을 시행하고 있다. 우연인지 모르나 우리 법률안은 일본것과 ‘붕어빵’처럼 일치한다. 시행착오를 줄이겠다는 의도인지 모르지만 입맛이 씁쓸하다. 어차피 실시해야 한다면 시행과정에서 나타난 다른 나라의 문제점들을 면밀하게 검토해 사람의 실수를 최소화해야 한다. 세상에 생명만큼 소중한 것이 또 있겠는가.

이규민<논설위원>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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