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형준/반도체 빅딜 바람직한가

  • 입력 1998년 12월 6일 19시 21분


반도체는 최근 몇년간 한국의 핵심적 수출 상품(96년은 국내수출의 13%차지)이었다. 또한 외화 가득률도 40% 이상인 한국의 대표적 효자 산업이다. 앞으로 맞이할 21세기 정보통신시대에도 반도체는 한국의 핵심적 상품이 될 것이 확실하다. 최근의 국가 국제수지를현재의수준에서유지시키는 데도 반도체산업이 중차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 빅딜이 과연 한국경제에 바람직한지 짚어보아야 한다.

D램 반도체 제조분야에서는 삼성전자가 기술에서 세계 제일의 기업이 되었다. 그리고 현대전자와 LG반도체도 나름대로 기술개발을 통해서 세계 반도체산업의 주도적 기업이 되었다. 그래서 한국은 D램시장의 35%이상을 점하고 있는 최대 D램 생산국이 되었다. 한국의 첨단산업 중에서 반도체 산업만큼 세계적 기술우위품목이 없다. 그런데 단순히 국내 재벌기업의 업종 단순화, 고부채기업의 정리차원에서 빅딜이 결정되었다면 다시 한번 반도체산업에 의해서 21세기에 빛날 국가전자산업의 앞날을 생각하여 재고되어야 한다.

반도체산업은 기술력의 확보가 촌각을 다투는 산업이다. 그런데 빅딜의 소용돌이 속에서 두 기업의 직원들은 회사의 향배에 촉각을 세우느라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

또한 합병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상태에서 경영권을 정하는 문제 때문에 외국의 전문 평가회사를 통한 실사를 하고 있다. 외국의 기업에 실사를 시키면 이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적 노하우가 외국의 경쟁회사에 다 노출될 텐데 과연 이를 국가산업을 위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실사와 계약단계를 거치는 빅딜의 수순이 진행되면 이들이 이룩해놓은 기술력은 후진 기술이 되어 합병이 될 시점에는 수준 미달의 회사로 남게 되어 부실의 정도가 더욱 커지지 않을까 두렵다.

정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빅딜의 목적이 문어발식으로 확장되어 있는 다섯 재벌들의 무모한 사업 확장을 규제하려는 데서 시작되었다면 반도체는 그런 무모한 사업확장의 범위에서 제외시켜야 한다.

세 회사가 현재의 체제를 그냥 유지하고서도 우리는 채산성 있는 산업으로 육성시킬 수 있다. 반도체 부문은 합병을 통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반도체산업 내에서의 각 기업의 제품을 특성화시킴으로써 더욱 알찬 구조조정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삼성의 경우 컴퓨터중앙처리장치(CPU)부분에 상당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으므로 이 부분을 삼성에 특성화시켜야 한다. LG는 멀티미디어 집적회로(IC)칩의 설계 및 제작에 연구를 많이 해왔다고 본다. 그리고 현대는 통신용 산업용 IC에 많은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각 기업이 반도체의 특성화된 부분으로 기술력과 자본을 집중한다면 무리한 합병이라는 구조조정보다는 더욱 알찬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한국의 반도체산업은 주로 D램에 의존하고 있으며 D램 시장은 전세계 반도체 시장의 15%정도다. 그리고 한국은 이 D램 시장의 35%정도를 확보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생산국가이다. 반면에 반도체시장의 약 85%는 시스템 IC 제품이 차지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 분야의 시장점유율이 겨우 1.6%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시장은 소량다품종의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대기업보다는 작은 회사가 유리하다. 따라서 하나의 합병회사로 만들기보다는 두 개의 회사로 그냥 두어서 각각의 시장개척을 위한 기술력과 생산설비를 갖추어 나가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김형준<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