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박윤철/꽉 막힌 장애인 배려

  • 입력 1998년 12월 9일 18시 55분


“아저씨 이 휠체어를 계단 위로 좀 올려주세요.”

뇌성마비 1급장애인인 이현정씨(25·여)는 오늘도 지하철역 계단 앞에서 행인들을 향해 힘들게 외쳐본다.

일주일에 두번씩 서울 송파구 오금동의 장애인 전용체육관인 ‘곰두리체육관’을 찾는 이씨는 체육관 근처 지하철5호선 개농역까지 도착한 다음 항상 이렇게 한참동안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려야 한다.

자원봉사자가 따라와도 휠체어를 지상까지 올리기 위해서는 어른 두세명의 힘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불편한 몸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장애인수용시설 밖으로 나가기 힘든 이씨에게는 2년전부터 이 체육관의 미술교실에 가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다. 그렇지만 지하철역 계단 앞에서 말을 더듬어가며 행인들에게 사정을 하다보면 미술교실에 대한 설렘은 금세 서글픔과 분노로 바뀐다.

하루에도 휠체어를 탄 장애인 수십명이 이용하는 장애인체육관 근처의 지하철역이 개통한지 3년이 넘었는데도 장애인용 리프트가 설치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

지하철 역무원에게 이유를 물어본 적도 한두번이 아니지만 매번 듣는 대답은 “아직 예산이 없어서…”라는 것이다. 지난달에는 미술강습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이씨의 휠체어를 들고 계단을 내려가던 자원봉사자가 계단에서 넘어져 다리가 부러진 일도 있었다.

이씨도 목을 다쳐 아직까지 치료를 받고 있지만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

“장애인들의 목소리는 아무리 크게 외쳐도 잘 들리지 않나봐요.” 이씨의 안타까운 하소연이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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