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부출범 후 햇볕정책에 대한 논쟁이 일면서 보수니 진보니 하면서 국론이 엇갈렸다. 지금 우리사회가 이런 식의 한가한 이념논쟁을 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안정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햇볕정책은 조급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 안정에 정책 초점을 ▼
서해안 간첩선사건에 이어 나이키 미사일 오발사고, 불발탄폭발사고, 조명탄탄피의 가정집날벼락, 거기에다 판문점 경비병의 북한병사접촉 등 육해공 해병대를 가리지않고 터지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군의 사건 사고가 전부 햇볕정책에 기인한 군기해이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포용정책이 천명되고 금강산관광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군의 기강해이가 무관한지는 철저히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국가안보는 정부정책의 최우선순위에 속한다. 요즈음 북한이 다소나마 경제적 문호를 열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햇볕정책에 감화돼서가 아니라 철저히 그들의 계산과 필요에 의해서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제2건국위도 ‘초권력기관’이니 ‘재집권을 위한 관제운동조직’이니 논란을 빚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정치적 측면보다 제2건국운동은 중환자상태에 있는 이 사회를 불필요하게 흔들고 있다는 측면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 기구를 통해서 난국극복을 위한 의식생활개혁을 주도한다지만 이런 기구가 설립된다고 해서 난국이 수습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일수록 정책은 냉정해야하고 사회안정을 존중해야한다. 국민적 공감대를 토대로 정책을 추진해야 할 시점에 불요불급한 일때문에 국론분열을 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의식개혁은 민주주의 문화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에 다름아니다. 미국헌법전문에는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없으며 복지와 자유 등에 관한 개념규정도 불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민주주의가 가능했던 것은 헌법이 채택되기 1세기 전부터 이미 민주적 가치를 존중하는 시민문화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1788년 미국헌법이 발효됐다고 해서 민주적 시민문화가 완성된 것도 아니다. 노예제도가 그대로 남아 있었고 1865년 남북전쟁이 끝난 뒤에도 흑인차별은 여전했다. 미국역사학자들이 ‘재건’이라고 부르는 미국판 ‘제2건국’이 1867년 시작됐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마틴 루터 킹목사 암살사건과 로드니 킹사건에서 보듯 미국의‘제2건국’은 영원히 성취될수 없을 것이다. 데이비드 앱터교수(예일대)의 지적과 같이 원래 시민의식의 성장이란 절망적일 정도로 속도가 느리다.
IMF시대에 국민은 ‘먹고 살기도 힘든 때에 의식개혁이 뭐냐. 먹고 살 수 있는 일자리를 보장해 주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라며 의식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인사들부터 먼저 개혁하라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제2건국운동의 앞날이 순탄치 않음을 예고해주는 대목이다.
지금 민주적 시민사회정착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교육개혁이다. 학교폭력 따돌림 촌지문제로부터 대학입시제도에 이르기까지 우리교육의 심각한 문제점들을 차근차근 바로잡아가는 것이 국민의식을 개혁하는 가장 빠르고 가장 바람직한 길이다. 국가발전문제 전문가들은 국민 캠페인, 특히 관 주도의 운동은 시대조류에 맞지않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문제투성이의 우리 교육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 그런 만큼 관이 아닌 시민단체 주도의 캠페인을 대안으로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국민적 합의가 중요 ▼
6·25이후 최대의 국난이라는 오늘의 상황을 감안할 때 지금은 거창하거나 겉보기에 그럴 듯한 관 주도의 운동을 할 시기가 아니다. 새로운 정책을 서두르기보다는 경제살리기에 총력을 집중하고 국가안보를 다지면서 사회안정을 도모할 때다. 국민적 합의도출에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있는 정책은 일단 뒤로 미뤄야한다.
정부의 유일한 목적은 국민의 행복이며 이를 위해서는 국민적합의가 무엇인가에 항상 민감해야한다는 존 애덤스 미국 제2대 대통령의 말을 새삼스레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
안영섭<명지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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