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생각하며]박수연/신바람나는 孝문화

  • 입력 1998년 12월 10일 19시 42분


우리 복지관 노인정에는 별명이 욕심쟁이인 한 할머니가 계신다. 내 어깨에도 못 미치는 작은 키의 깡마른 체격이지만 식욕이 엄청나고 먹는 것에 욕심이 많아 붙은 별명이다.

우리 복지관 직원들을 보면 먹을 것을 달라고 조르는 그 할머니는 무료급식을 할 때도 항상 밥을 두번 타 드시고는 조그만 공기에다 밥을 한 공기 더 타 놓으신다. 한두시간 후에 잡수시기 위해서다.

그 할머니는 복지관 근처의 영구 임대 아파트 주민은 아니다. 그옆의 부자들이 많다는 빌라촌에 산다. 하지만 언제나 우리 노인정에서 하루를 보낸다. 가늘고 주름진 손에 금반지를 세개씩이나 끼고 다니며 자식자랑을 한다. 허리가 아프면 노인정에서 누워 TV를 보거나 잠을 자고 나른한 오후가 되면 정자에 쪼그려 앉아 우두커니 담배를 피우면서 그렇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정서불안으로 다른 것에 집착하듯 가족과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더 이상 느끼지 못하는 그 할머니는 그런 공허함을 먹는 것으로 채우고 있는지도 모른다.생활수준의 향상과 의료기술의 발달로 노인인구가 늘어나면서 노인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슈화되고 있다. 노인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복지관 앞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그 욕심쟁이 할머니 생각이 난다. 가족에게 소외당하고 ‘문화’라고는 노인정에 있는 TV와 화투가 고작인, 그래서 가족과 사회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먹을 것으로 보충하려는 그 할머니는 우리의 노인문제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적인 예이다.

실버사회가 성큼 다가오고 있는 이때, 전통적인 가족기능의 상실과 경로효친 사상의 쇠퇴로 우리 노인들은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한때 한강의 기적을 이룬 주역인 그들이 지금은 TV가 덩그렇게 놓여 있고 화투장이 널브러진 노인정으로, 차디찬 거리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유엔은 1999년을 ‘세계 노인의 해’로 선포했다. 세계 노인의 해를 맞아 우리는 가정에서, 사회에서 내몰리고 있는 노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노인들이 경제력을 갖도록 취업 기회를 확대한다든지, 양로원이나 복지시설에 투자를 하는등 할일이 많을 것이다. 그중에도 우리는 우리 가족과 사회 속에서 노인들이 자신의 정체감을 찾도록 하는 노인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어둡고 칙칙하고 냄새나는 문화가 아닌 밝고 건전한 노인문화를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른 나라에서 노인복지 정책의 모델을 한국에서 찾을 수 있도록 ‘효의 사회화 운동’을 벌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본다. 88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보았듯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다. 손자와 할머니가 함께 살 수 있는 신바람나는 문화, 노인들이 더 이상 소외당하지 않고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사회를 창출해야 한다. 그러려면 아이디어 개발과 체계적인 예산 지원이 중요하다. 바로 우리 젊은이들이 해야 할 일이다.

내년에는 허한 마음을 채우고자 먹을거리를 찾아다니는 욕심쟁이 할머니가 아닌, 다양하고 기발한 노인문화 속에 한데 어우러져 환하게 웃고 있는, 더 이상은 ‘욕심쟁이’로 불리지 않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았으면 한다.

박수연(서울우면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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