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과 승주는 계속해서 떠들어댔다. 해가 짧은 계절이라 밖이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정확히 다섯시가 되자 경리 아가씨가 가방을 메고 일어섰다. 조국이 말했다.
“어, 그래 미스 김, 퇴근해. 우리는 오늘 중요한 구상 때문에 야근을 해야 하니까, 태화루에다 야끼만두하고 배갈 좀 시켜주고. 가만 있어봐. 노 나는 판에 만두가 뭐냐, 야, 미스 김, 탕수육으로 해라. 너도 먹고 가려면 짬뽕 하나 추가하고. 양파 많이 달라고해.”
미스 김이 막 전화기를 들려는데 벨이 울렸다. 이어 미스 김의 짜증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 참, 그렇다니깐요. 이사님도 안 계세요. 본사 들어가셨다구요.”
내가 조국에게 물었다.
“본사는 또 뭐야?”
“협찬사 말야. 사장이 아마존 종단 떠난 거 쌍마자동차 협찬이거든. 사장 떠나기 전날까지 본사 홍보실하고 경기도에 있는 공장하고 졸나게 왔다갔다했다. 돈은 홍보실에서 나오고 지프차는 공장에서 나오니까.”
“차까지 협찬받았어?”
조국은 사장이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성공하기까지의 무용담을 신나게 늘어놓았다.
물론 사장은 사진을 잘 찍었다. 그러나 그 정도로 잘 찍는 사람은 너무나 많았다. 또한 그러나 그 사람 중에 사장만큼 무모한 사람은 드물었다. 아직 젊은 나이일 때 사장은 부리부리한 눈을 빛내며 다짜고짜 쌍마자동차 회장을 찾아갔다. 경비실에서부터 비서실까지의 어려운 관문을 어떻게 통과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외디푸스처럼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었든 알리바바처럼 도둑의 주문을 훔쳐들었든, 중동전의 스커드 미사일로 폭파를 했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아무튼 그는 신화시절에나 가능하고 위인전 혹은 헐리우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을 해냈다. 회장을 감동시키고 돈을 얻어온 것이다.
전해진 바에 따르면 회장은 패기만만한 김태성 사장의 모습에서 젊은 날 자신의 맨주먹 창업시절을 떠올렸다고 한다. 지구촌 구석구석에 사는 인류를 지구가족의 이름으로 모조리 필름에 담겠다는 사장의 포부는 진한 휴머니즘을 느끼게 했다. 회장은 무엇보다 ‘하면 된다’는 도전의식, 그리고 자신과 같은 거물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적 순수함에 점수를 주었다.
한편 사장이 준비해간 선물에 만족했다는 말도 있다. 사장은 회장의 모습이 담긴 슬라이드를 구해서는 전지로 현상을 한 다음 다시 그것을 여러 장 이어붙여 초대형 브로마이드를 만들어갔던 것이다. 사장은 또 신선한 아이디어로 회장을 놀라게 했다. 식인종의 등에 쌍마자동차의 로고를 그려넣은 다음 사진으로 찍어오겠다든지, 인디오 여자에게 역시 쌍마자동차 로고를 커다랗게 뜨개질을 시켜서 지프위에 깃발처럼 붙이고 다니겠다든지 그것을 주문 상품화할 수도 있다든지, 그런 것들을 모두 광고로 활용할 수도 있다든지. 그런 이야기를 들은 회장은 마치 ‘홍길동전’처럼 황당하다고 재미있어 했다는 뒷얘기가 있다. 수많은 고급 두뇌를 거느린 회장은 거칠고 황당한 이야기를 들어본 지 너무 오래 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글: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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