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학교운영위 격하 안된다

  • 입력 1998년 12월 15일 19시 09분


요즘 국공립 초 중 고교에는 ‘학교운영위원회’라는 기구가 구성돼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위원으로 위촉된 학부모 대표와 지역 인사들이 교장 교사들과 머리를 맞대고 학교운영을 논의하는 것은 전에 볼 수 없던 새로운 광경이다. 제대로 운영한다면 기존 학교체제에 신선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런데 이 기구를 사립학교까지 확대하는 과정에서 기구 자체가 유명무실화할 위기를 맞고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가 이 기구를 심의기구에서 자문기구로 격하시키는 개정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은 사립학교에 대해서는 학교운영위 설치를 강요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국회 교육위는 사립학교에도 학교운영위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 개정작업을 벌여왔으나 사립학교측의 반발이 거세자 자문기구로 위상을 낮추는 절충안을 마련한 것이다. 현재 국공립학교에서 학교운영위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이 기구가 심의기구이기 때문이다. 학교운영과 관련된 중요한 사항은 반드시 학교운영위의 심의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학교장은 학교운영위에 의견을 묻는 절차만 거치면 되므로 학교운영위의 권한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학교장 결정에 손을 들어주는 형식적인 기구에 머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심의기구와 자문기구의 근본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교육수요자가 학교운영에 직접 참여해 감시 감독한다는 이 기구의 도입취지도 실종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학교운영위의 위상을 정하는 문제는 교육개혁의 성패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입 무시험전형 확대와 교사정년 단축 등 교육부가 내놓은 일련의 조치들이 ‘위로부터의 개혁’이라면 학교운영위 활성화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에 해당한다. 학교운영위는 교육위원 선출과 학교발전기금 모금, 대입 교장추천 학생 선발까지 맡고 있다. 한마디로 교육현장에서 개혁이 어떻게 이뤄지는가를 감시하는 중요한 역할이므로 마땅히 그에 걸맞은 위상이 부여되어야 한다.

사리가 이러하다면 국회 교육위가 내놓은 개정안은 철회되어야 마땅하다. 사립학교에 설치된 학교운영위가 재단 운영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면 국공립학교에 대해서는 심의기구로, 사립학교에는 자문기구로 각각 성격을 달리하는 것도 한가지 방안일 수 있다. 그러나 사립학교들이 재정의 90% 이상을 정부 지원이나 공납금 수입으로 충당하는 ‘준공립학교’인 점을 감안할 때 감시기구로서의 학교운영위는 오히려 위상을 더욱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교육개혁이 교육현장에서부터 후퇴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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