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는 출범 후 근 1년간 역대정부가 해내지 못한 정부산하기구와 출연기관, 그리고 보조단체들에 대한 개혁 등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나 수십억원씩 들여 주로 경제연구소나 회계법인들로 하여금 정부 각 부처의 경영진단을 하는 등 정부와 시장의 성격을 혼동하는 이러한 개혁은 그 본질과 방향에 의구심만 자아내게 한다.
▼ 효율성에 가린 공공성 ▼
한국 관료의 염색체에는 혈연 지연 학연 등 끈끈한 정이 배어 있다. 피터 에번스는 이를 ‘체화(體化)된 자율성’이라고 하여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소인으로 높게 평가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는 아직도 동원을 기본원리로 삼는 아시아적 생산양식에 젖어 있다.
옛날 홍수가 나서 관개사업을 할 적에 국민을 동원했던 그 전통은 농촌에서 병충을 예찰(豫察)하고 박멸하는 일을 비롯해 재해대비나 환경개선사업을 할 적에 공무원들을 동원하는 오늘로 이어진다. 국가와 사회의 본질을 무시한 영국식 책임경영제가 국가의 하부조직을 책임질 수 없는 한 증좌이다.
그런데도 이 나라 개혁은 새뮤얼 헌팅턴의 지적대로‘그저 별날 뿐 전혀 보편성이 없는’ 서양방식을 좇아 효율성만 높이면 된다고 착각하고 있다. 결국 이번 개편작업으로 정부조직은 개방형 계약형으로 바뀌고 민간위탁이나 경영이 늘어날 터인데 정부만큼 위선의 가능성이 높은 시장으로 비중이 이동하는 것이 정도(正道)는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사익성이 지선인 회계법인이나 외국 컨설팅회사의 경영진단만으로는 공공성 형평성 그리고 절차와 규칙의 준수 등 정부의 본디 기능을 제대로 밝혀낼 수가 없다. 정부는 기업과 달라 손해를 보면서도 서비스를 해야 하는 절명의 사명을 띠고 있는 것이다. 행정학도가 경영교과서를 참고삼아 대기업을 진단할 수 없듯이 경영학도가 정부를 진단하는 것은 무리다.
오늘날 국가의 성격이‘행정국가’에서 ‘관리국가’로 옮겨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추세 때문에 행정을 경영과 동일시하려는 사람이 많으나 관리국가론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제약은 내부시장의 형성에서 오는 거래비용의 증대, 그리고 기회주의의 만연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외부에서 정부로 들어오는 전문가들이 공공부문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그 비용은 다른 것을 절약해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권위주의적 관료가 되어 다른 기관을 지배하려 든다.
그래서 만일 경영진단의 결과가 조직과 사람을 줄이고 몇 기관을 에이전시(책임경영조직)화하는 대안을 제시한다면 그것은 개혁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다. 개혁이 정작 주목했어야 할 일은 이 나라 행정이 안고 있는 고질병들, 이를 테면 부처간 조정의 문제, 지극히 도구적인 평가방법, 공무원 충원같은 정부의 소프트웨어정책 등에 눈을 돌렸어야 했다. 다운사이징같은 것은 각 부처 스스로가 했어야 옳았다.
정부는 운영도 그렇고 개혁에서도 우체국같은 사업성 조직에나 타당한 ‘경영’이라는 관념에서 한시바삐 벗어나기 바란다. 그러면서 개혁의 본질이 정부의 효율성 증대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국민이 얼마나 더 편안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나아가 더 명심할 것은 정부개혁이 빛과 어둠이라는 이분법으로 공동환상의 허구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있다. 그것은 즉 개혁의 주체는 항상 옳고 선이며 같은 정부의 그 객체는 그른 것이고 악이라는 환상을 거두는 일이다.
▼ 규모보다 질 개선해야 ▼
에드먼드 사이드가 말하는 이 허구는 유럽이 아프리카를 지배할 때 내세운 정당성의 논리인데 아프리카는 광활한 대지와 자연에다 광란이 곁들인 아름다움이 있어 유럽의 매끄러운 표피보다 훨씬 나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개혁의 주체부터 빛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뼈를 깎는 아픔을 견디며 국가와 사회의 본질을 터득하고 스스로를 공공성의 원리로 개혁하는 노력을 경주하기 바란다.
지금쯤 기획예산위원회 정부개혁실 자체의 개편안을 내놓거나, 아니면 개혁주체를 경제성 기구로부터 떼어내는 개혁을 할 때가 되었다.
김광웅<서울대교수·정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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