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이너 리그 (51)

  • 입력 1998년 12월 16일 19시 08분


화적 ⑦

배갈 기운이 오르자 조국과 승주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들의 브라질 꿈도 점점 장미빛이 되어갔다. 뻬뜨루 최에 따르면 브라질은 한국 남자에게 천국이었다. 자동차를 탄 채로 들어가는 러브호텔은 버튼만 누르면 천장이 열려 별이 보였으며 야자수 아래 풀장까지 갖춰져 있었다. 그곳에서는 어찌된 셈인지 예쁜 여자까지도 거만을 몰랐다. 밤새 헌신적인 데다 가격까지 절약형이었다. 브라질 창녀 예찬을 승주는 철저히 믿었다. 아마 그녀들이 끈으로 묶는 형광팬티를 유니폼으로 입으며, 팬티 앞부분에 국제 공용어인 에스페란토어로 ‘닦고 조이고 기름 치자’라고 씌어 있다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

화제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승주를 찾는 김 간호사의 전화였다. 전화를 끊고 나서 승주는 투덜댔다. 김간호사가 남편의 사랑을 얻으려는 방면으로는 전혀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대신, 야간에 탐정학교에라도 다니는지 날로 늘어가는 것은 허리살과 의심뿐이라고 말했다. 늦게 들어가면 주머니를 뒤집는 것은 물론이고 팬티 봉재선의 꼬인 실밥까지 일일이 풀어본다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당신 어떤어떤 년 만나서 무엇무엇을 먹고 마시다가 어디어디에서 자고 들어오는 거지? 라고 스토리가 꽉 짜여진 문초를 하곤 했다.

“그럴 땐 정말 미치겠어.”

“하루 이틀 일이냐?”

“그게 아니라니까. 마누라가 너무 기가 막히게 맞추는 거야.”

잡아떼는 데 이력이 난 승주이지만 자기도 모르게 “어떻게 알았어?”라고 할 뻔한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다. 나는 승주에게 애초부터 자기의 행적을 설명해주는 버릇을 들이지 않았어야 했다고 충고했다. 나는 야근이나 문상처럼 분명히 공개할 수 있는 외박도 운총에게 일일이 설명을 하지 않는다. 그래야만 진짜 외박을 할 경우 아무 설명 없어도 의심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차갑다는 둥 잔재미가 없다는 둥 불평을 듣긴 해도 그 편이 낫다. 늘 핑계와 알리바이를 창작해가며 피곤하게 바람을 피우는 사람들이 나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진짜 나쁜 놈들이 나쁘다는 소리를 한사코 듣기 싫어하는 것처럼 진짜 바람둥이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만큼은 눈물겹도록 고지식하다.

하긴 승주의 경우는 김 간호사의 지갑에 의존도가 높은 탓인지도 모른다. 승주가 자신을 따르는 여자들을 섭섭치 않게 하는 데는 당연히 돈이 들었고 그 돈은 어찌저찌 김 간호사의 지갑에서 나왔다. 현주누나의 통장에서 나올 때도 있었다. 회사차에 여자를 태우고 놀러가다 경춘가도에서 접촉사고를 냈을 때, 만취된 채 삐끼에게 붙들려서 결혼반지를 잡혔을 때에도 현주누나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다. 술집에 외상을 갚으러 가면 요령좋은 주인은 으레 공짜술을 대접하고는 적은 액수라도 새로운 외상을 달게 만든다. 다시 또 외상이 쌓이도록 만드는 정지(整地)작업인 셈이다. 승주는 그 사이클을 벗어나지 못했다. 돈을 줄 때마다 현주누나는 제발 정신 차리라고 승주에게 잔소리를 했다. 그러나 아직도 미모에 자신이 있는 현주누나는 일단 체급에서부터 승주를 누르고 들어가는 못생긴 김 간호사하고 살자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한편 동정하고 있었다.

<글:은희경>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