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낙연/韓-베트남 과거사

  • 입력 1998년 12월 17일 19시 04분


을지로 충무로는 서울에만 있는 게 아니다. 베트남에는 훨씬 많다. 하이바춘 창훈다오 바추 리타이토 레통키에트는 하노이의 간선도로다. 모두 중국이나 몽골 침략군에 맞서 싸운 영웅의 이름을 땄다. 베트남 국민은 긍지가 높다. 인도차이나 3국을 지배했던 프랑스 사람들은 이런 평가를 했다고 한다. 베트남인은 논에 들어가 벼를 기른다. 캄보디아인은 논두렁에서 벼가 크는 것을 본다. 라오스인은 집에서 벼가 자라는 소리를 듣는다…. 베트남 국민은 근면하다.

▼베트남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이 월맹 지도자 호치민 묘소에 참배했다. 김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한때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사죄했다. 일본천황이 우리에게 했던 발언과 닮았다. 그러나 트란 둑 루옹 베트남 국가 주석은 “미래 지향적 우호 협력을 통해 과거를 매듭짓자”고 말했다. 한일(韓日)과거사와 한월(韓越)과거사가 같지는 않으나 베트남의 대한(對韓)태도는 우리의 대일(對日)자세와 대비된다.

▼한국은 미국의 요구로 베트남에 파병했다. 국군 31만명을 보내 5천명이 전사했고 2만명이 부상했다. 베트남의 피해는 훨씬 컸다. 모두 국군이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3백만명이 죽었고 2백만명이 다쳤다. 국토는 폐허가 됐다.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는 라이따이한(한국인 2세)도 1만명을 넘는다. 그래도 우리는 베트남 특수(特需)를 얻었다.

▼국군이 싸웠던 월맹 지도자의 묘소에 참배하고 그 때 일을 사과한 데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이제야 김대통령이 처음으로 그런 일을 했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사죄는 오히려 미흡했다고 본다. 국민의 관심도 낮다. 우리는 피해자라는 생각에 너무 익숙해 가해자라는 생각은 별로 않고 있다.

이낙연<논설위원〉naky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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