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미술관옆 동물원」,밀도있는 대사 감칠맛

  • 입력 1998년 12월 17일 19시 21분


미술관 옆의 동물원. 과천 서울대공원에 갈 때마다 한번쯤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만드는 낯선 배치. 나란히 있지만 서로 다른 이 두 공간의 대비를 통해 이색적인 멜로 영화 한 편이 탄생했다.

19일 개봉할 ‘미술관옆 동물원’은 현실에서는 희귀하지만 영화속에서는 흔해빠진, 첫눈에 반하는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생 떽쥐뻬리의 ‘어린 왕자’에서처럼, 천천히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과정으로서의 사랑, 영화 속에서는 드물지만 일상에서는 훨씬 더 친숙한 이야기를 경쾌하게 펼쳐 보여준다.

미술관과 동물원은 두 주인공의 사랑에 대한 다른 태도를 보여주는 공간. 미술관을 좋아하는 춘희(심은하 분)의 사랑은 대상을 바라보기만 할 뿐 다가가질 못하는 정적인 것이지만 동물원이 대변하는 철수(이성재)의 생각은 능동적이고 솔직하다.

여자에게 채인 철수와 짝사랑에 속끓이는 춘희의 기이한 동거가 시작되고, 춘희가 쓰던 시나리오에 철수가 끼어들면서 이들의 사랑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이 영화속 영화에서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생각과 생활습관이 영 딴판인 철수와 춘희가 시나리오속 인물들에게 각자의 생각을 옮겨 심어주면서 토닥거리다가도 익숙해지고, 서로에 대한 감정이 조금씩 자라나는 변화가 섬세하게 그려졌다. 그러나 끝부분에서 둘의 감정이 갑자기 비약하는 것은 좀 느닷없다. 흥행을 고려한 결말같다.

배역에딱 들어맞는 배우 심은하와 이성재가 티격 태격 주고 받는 대사는 큰 기복이 없어 약간 지루할 수도 있는 이 영화에 탄력을 선사한다. 마음과엇가고 퉁명스러워도 서로에 대한 감정의 밀도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재치있는대사들에 시사회장의 관객들은 폭소로 반응했다.

충무로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여성감독 이정향이 직접 시나리오를 썼고 이 영화로 데뷔한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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