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에도 김부식은 자매지인 스포츠지로 밀려나 있었다. 2년 전 사회부에서 정치부로 옮겨갈 때 그는 그야말로 위세등등했다. 올라간다는 것은 물론 언젠가는 내려와야 한다는 뜻이겠지만 그는 그런 격언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키가 작아서 그런지, 똑같은 높이에 오른 사람보다 덜 올라갔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는 그는 늘 한쪽 발을 도전적으로 위로 치켜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차여서 굴러떨어진 것이다.
나는 김부식에게 브라질 건을 순전히 재미삼아 얘기했다. 그런데 뱀이 먹이를 발견한 듯 그의 세모꼴 눈이 갑자기 광채를 띠는 것이었다.
“펠레를 만나겠다고 했단 말이지…”
하면서 생각에 잠기는 표정이었으므로 나는 불안해졌다. 머리통 없이 발로만 뛰는 조국의 황당함을 동창인 김부식이 모를 리가 없다. 바로 조국이 한 말이라고 일러줬는데도 그 말을 진지하게 듣는다면 본지에서 떨려난 충격으로 머리라도 다친 게 분명했다.
“내가 밀어줄 테니까 해보라고 해.”
“뭐?”
“스포츠지가 연예지 아니냐. 딴따라들 섭외는 내가 도와줄 테니까, 펠레 좀 만나라고 하라니까. 한국에 초청을 해보라고 말야.”
그제서야 나는 김부식의 속셈을 알아챘다. 그는 특종을 원했다. 그리고 자신이 너무 무서운 존재이기 때문에 후생이 과외라는 말을 곱씹으며 사사건건 자신을 견제하는 부장의 시각을 바꿔줄 만한 계략을 연구중이었다. 브라질 건은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었다. 김부식 덕에 부장이 브라질에 취재 겸 관광을 다녀오면 그를 보는 눈이 약간은 고와질 것이고, 또 잘만 하면 다음달에 창간 2주년을 맞는 자기네 신문에 펠레 초청 특종을 내고 다음 인사 때에는 다시 정치부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주 빠르게 김부식의 머리를 스쳐간 모양이었다. 또한 그는 한두 달 후에 편집기자를 특채할 계획이 있다는 귀띔도 해주었다. 거기 대해 자기 부장이 얼마간의 권한을 갖고 있다는 정보와 함께. 하지만 나는 미끼를 덥썩 무는 타입이 아니었다. 내게서 사표를 강탈해간 회사 부장은 그런 나를 소극적이고 우유부단하다고 지적하곤 했지만 나는 단지 신중할 따름이다. 단언하건대 만약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김부식이 뭐라든 브라질 쇼 따위에 관여할 내가 아니다. 그러나 바람이 들이닥치니 문이 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뻬뜨루 최가 보낸 세 장의 비행기표가 도착한 것이었다.
그날 조국의 회사에서는 사업계획을 설명한다는 구실로 온갖 사람한테 브라질 간다는 자랑을 하느라고 전화에 불이 났다. 낙원 떡집도 놀라고 말았다. 조국의 회사가 떡을 이천 원어치 이상 팔아준 것은 창사 이래 처음이었다. 아내에게 그 소식을 듣고서 혹시 사장이 재작년에 맡겼던 코트의 드라이비를 받을 수 있을까 이층으로 올라와본 세탁소 주인 역시 놀랐다. 조국이 그 돈 5천 원을 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나 그 5천원을 승주한테 빌리자고 하자 승주가 지갑을 꺼낸 것이나, 그 속도가 너무 신속했기 때문이었다.
<글: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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