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낙연/국방장관 해임건의안

  • 입력 1998년 12월 22일 19시 40분


정치도 승부의 세계다. 다만 승부가 스포츠만큼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야당이 군기이완 책임을 물어 발의한 천용택국방장관 해임건의안도 그랬다. 건의안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1백50명)의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됐다. 천장관은 자리를 유지하게 됐다. 이것만 보면 여당이 이겼고 야당이 졌다. 그러나 여당은 씁쓸해 했고 야당은 웃었다. 그런 관점에서 표결결과는 절묘했다.

▼찬성 1백35, 반대 1백35, 기권 1, 무효 1표. 찬성은 야당의 출석의원(1백31명)보다 4표 많았다. 반대는 연립여당의 출석의원(1백39명)보다 4표 적었다. 어떻게 계산해도 연립여당에서 최소한 4표가 이탈했다. 야당은 ‘실질적 승리’이자 ‘정치적으로는 가결된 것’이라며 천장관 해임을 거듭 요구했다. 야당으로서는 한번쯤 해 볼 만한 주장이다. 법적 근거는 없다. 정치적 주장이다.

▼문제는 연립여당이다. 국민회의는 자민련을 의심하는 듯하다. 자민련은 평소부터 안보에 완강하다. DJP연대도 세월과 함께 풍화(風化)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이탈표가 자민련에서 나왔다는 확증은 없다. 국민회의에서 안나왔다는 보장도 없다. 의심은 무익하다. 의원 개개인의 진의가 표시됐다면 이탈표도 나쁠 게 없다. 인사(人事)안건을 무기명 비밀투표로 처리하는 취지도 거기에 있다.

▼여당이 유의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안건의 명분이 확실해야 의석수가 완전한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 천장관 해임반대는 그만큼의 명분을 갖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지난 8월3일 국회의장 선출을 뒤집어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야당에서는 1백49명이 투표했으나 야당의 의장후보는 1백39표(3차 투표)밖에 못 얻어 낙선했다. 야당의원들이 그 후보를 지지할 명분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이낙연 논설위원〉naky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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