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이너 리그（５８）

화적 ⑭

선거를 할 때 대중들은 그 놈이 그 놈같은 후보 중에 그래도 얼굴 아는 사람을 찍게 된다. 그러므로 연예인에게 유리한 점이 있다. 우리가 섭외할 가수는 그 사실을 선배 코미디언의 성공을 통해 깨치고 있었다. 자기 인생을 노래 반세기로 보낼 마음이 전혀 없었던 그는 다음다음의 총선 때쯤이면 혹 후보자리를 줄지 모른다는 기대에 2번 후보의 지원연설을 하느라 몹시 바빴다. 그러므로 승주를 만나줄 리가 없었다. 그 일은 나를 통해 즉시 김부식에게 보고되었다.

김부식은 ‘이런 건방진!’을 내뱉더니 곧바로 괘씸죄를 엄히 다스리는 기사를 써제꼈다. 아무개 가수가 브라질쇼에 출연하기로 약속해놓고 일방적으로 파기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모 후보의 선거유세 때문인데 그는 말하자면 개인적 영달에 눈이 어두워 공인으로서의 신의를 저버리고 있었다. 그 한 가지 경우만 보더라도 그 후보를 지지하는 선거 캠프가 얼마나 불공정한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는지 알 만한 일이었다. 그 후보에게 과연 대선 후보로서의 양식이 있는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 기사는 가뜩이나 지탱하기 어려운 조국과 승주의 어깨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사실을 알고보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정치부 기자였던 김부식의 아부였다. 보수언론인 그의 신문사 사주가 미는 대선 후보는 당연히 1번이었다.

경쟁 후보에게 해될 일이라면 일부러 찾아 다니는 판국에 김부식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던 것뿐이었다.

펠레 건으로 뻬뜨루 최에게서 팩스가 왔다. 그는 낡아빠진 어법으로 멋을 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펠레는 브라질에서 살지 않고 미국에서 살아요. 이것이 나쁜 소식이고, 좋은 소식은 곧 그의 비서가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펠레가 한국에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전화로 그 내용을 전하자 김부식은 한달음에 낙원떡집을 찾아 조국의 사무실로 달려왔다. 그는 조국이 모처럼 인절미 아닌 호박떡을 사왔는데도 떡은 먹지 않고 팩스만 손에 쥐고 돌아갔다. 그가 돌아가자 조국과 승주는 한마디씩 했다.

“꼬마병정 쟤, 그래도 키 많이 컸다. 내 가슴까지는 오던데?”

“쪼그만 놈이 웬 인상은 그렇게 쓰냐? 안 그래도 주름살은 충분하더구만.”

“그래도 우리 동창 중에 저만하면 출세한 거지?”

“출세한 놈들 보면 이해가 안 가. 왜 혁대 없다고 허리에 자물통 채우고 다니던 놈 있지? 걔가 무슨 아나운서 됐다더라. 그리고 느물느물하고 거짓말 잘 하던 ‘물오징어’ 걔가 국회의원인가 시의원인가 됐다면서? ‘따개’ 걔는 어디 종합병원 과장이고. 반도체 박사라는 ‘세모돌이’랑 걔들 다 우리한테 말 붙이면 콧방귀 한 방에 날려주던 놈들 아니냐.”

“그 얘기를 왜 지금 하냐?”

조국이 화난 듯이 되물었다.

“걔들한테 가서 이번 사업 수익금으로 모교에 컴퓨터 몇 대 기증한다고 하고 협찬금 받아낼걸 그랬잖아.”

<글:은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