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이너 리그(59)

  • 입력 1998년 12월 26일 09시 12분


화적 ⑮

김태성 사장에게는 그동안 연락 한 번 없었다. 조국은 아마존 오지에서 고립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짐짓 걱정했다. 빗물을 받아먹으면서 틈틈이 연기를 피워올려 구조대를 부르고 있을 거라고도 했다. 사실은 아름다운 남미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교민들에게 개고기를 대접받으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확률이 많다는 것을 승주와 나는 알고 있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사장의 연락을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섭외는 김부식의 힘으로도 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빚쟁이들은 여전히 찾아왔지만 덩달아 브라질 바람이 든 미스 김이 대륙적으로 거만하게 따돌렸다. 그러나 미스 김도 따돌리지 못하는 손님이 있었다. 건물 주인이었다. 건물 주인은 넉 달이나 밀린 사무실 임대료를 그 주일 안으로 내지 않으면 당장 다른 사람을 들이겠다고 통고했다. 같이 온 부동산 주인이 임대료를 올리고 들어올 세입자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음을 입증해주었다.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뻬뜨루 최에게 협찬금의 일부를 미리 달라고 팩스를 보냈다. 비서라는 사람에게 대신 답장이 왔다. 뻬뜨루 최는 미국 출장중인데 주말에 돌아오는 대로 송금을 하겠다고 하니 송금 방법을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자서전의 선금도 함께 보내겠다는 거였다. 그럴 줄 알았다니까! 팩스를 돌돌 말아 흔들며 조국은 환호했다. 하긴 내가 생각하기로도 모든 것이 순조로운 편이었다. 임대료가 급하니 잠깐 내 퇴직금을 좀 빌리자는 것은 승주의 제안이었다.

“글세. 내 퇴직금을 밀어넣을 정도로 나한테 중요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중요한 데보다 급한 데를 먼저 막아야지, 넌 취미가 바둑이라면서 그것도 모르냐”

“뻬뜨루 최가 다음주면 돈을 부치잖아. 그때까지만인데 뭘 그래.”

조국이 거들고 나섰다. 그것이 바로 내 퇴직금이 대한민국 육군만큼이나 경비태세가 철통같은 운총의 통장을 탈출하여 나온 사연이었다.

그해 12월 18일은 평산 인터테인먼트 최대의 날이었다. 김부식이 드디어 특종을 터뜨렸다. 1면을 가득 채운 톱기사의 제목은 이러했다. 펠레, 한국 온다. 흥분된 승주와 조국은 신문에 코를 처박았다. 기사에 따르면 펠레는 내년 봄에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이 초청은 평산 인터테인먼트의 기획팀인 김형준, 조국, 배승주 세 이사가 브라질을 방문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평소 한국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왔다는 펠레는 수 차례에 걸친 팩스를 통해 이번 방문기간 동안의 일정을 평산 인터테인먼트와 협의해왔는데… 그 다음은 읽을 필요가 없었다. 둘은 자신의 이름이 난 부분만을 되풀이해서 큰소리로 되풀이 읽었다.

“야, 스포츠신문도 해외로 나가냐? 두환이 자식, 우리도 신문에 난 거 알까?”

“뭐야, 이거? 오보잖아?”

승주가 손가락으로 한 줄을 가리켰다.

“왜 형준이 이름이 제일 앞에 오냐? 주최측의 농간 아니냐.”

우리 중에 펠레가 진짜 올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부식에게도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글: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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