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업무를 위탁받은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이 조직을 통합하면서 27개 지사를 폐지한 것처럼 보고한 후 이름만 바꿔 존속시킨 사례는 눈가림식 개혁의 표본이다. 인건비를 줄이라니까 삭감한 사업비를 끌어다 상여금으로 나눠준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자세도 개혁을 거부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대한지적공사의 수수료인하도 따지고 보면 교묘한 숫자놀음에 그쳤다니 이러고도 정부기관이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밖에도 유사한 반개혁적 사례가 허다한 것으로 지적됐다.
대부분의 산하단체는 국민의 세금으로 설립됐거나 소비자에 해당하는 대다수 국민이 낸 돈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물론 이들 가운데는 에너지관리공단이나 무역협회처럼 목표를 초과달성한 곳도 많다. 성공적 경영혁신 배경에는 기관장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눈가림식 개혁을 한 기관대표들의 성향은 이미 드러난 셈이다. 속임을 당한 국민의 마음을 신상필벌로 위로해야 할 것이다. 경제대란으로 표현되는 이 시대만큼은 개혁의 의지와 능력을 갖춘 인물이 기관장의 자리에 걸맞는다.
정부기관의 개혁실적은 민간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강조된다. 솔선수범해야할 정부 및 정부기관이 스스로에게만 너그럽다면 아무도 고통스러운 개혁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평소 국제경쟁력을 갖추려고 부단히 노력해 온 민간기업들조차 환란 이후 뼈를 깎는 경영혁신에 나서고 있다. 국가 돈으로 방만하게 유지되어 온 정부산하 기관들이 아직도 구태를 유지하려 한다면 국민적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국난을 겪으면서 공공기관을 지켜보는 국민의 눈은 한층 예리해졌다.
경제개혁과 이를 뒷받침할 구조조정은 이 시대 우리에게 주어진 지상과제다. 어떤 명분으로도 회피하거나 거부하려 해서는 안된다. 순간만 넘기면 되더라는 과거의 경험이 더이상 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같은 분위기를 놓치면 앞으로 정부단체의 구조조정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일 이번에 공기업과 산하단체의 개혁이 성공해 국민의 지출부담과 국가전체의 낭비가 줄어든다면 이는 환란이 가져다준 중요한 선물이 될 수도 있다. 산하단체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더욱 엄격하고 지속적인 개혁감시 활동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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