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단일통화인 유러의 출범에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 아닐까. 달러에 대항하는 통화가 전후(戰後) 처음으로 출현하기 때문이다.
유러에 참여하는 11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6조5천억달러로 미국의 80%, 일본의 1.5배다. 여기에 영국 등을 더하면 미국을 웃돈다. 5천억 달러에서 1조달러의 금융자산이 달러에서 유러로 바뀌리라는 예측도 있다. 유러 출범이 미국에 위협으로 비치는 것은 유일한 기축통화국으로 누렸던 ‘특권’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계최대 채무국인 미국이 아시아 및 중남미와 달리 통화위기를 겪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달러 덕분이었다. 아무리 적자를 내도 자국 통화인 달러로 지불하면 됐기 때문이다.
유러의 등장은 이 구조를 부술 가능성이 있다. 미국경제의 장래에 불안이 높아지면 자금이 한꺼번에 유러로 이동해 달러가 폭락하거나 외국기업이 달러를 거부할 수도 있다.
달러 패권의 종막은 세계경제의 안정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거액의 자금이 달러와 유러 중 한쪽으로 대거 이동하고 환율급변으로 세계경제가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다.
70년대초 주요 통화가 변동환율제로 이행된 뒤 실패의 연속이었던 환율안정 시도는 유러의 등장으로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엔화는 2대 통화의 틈새에서 지역통화 역할을 하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그렇다고 엔화의 국제화를 향한 노력을 아껴서는 안된다. 외국인들이 엔화를 이용하면 일본을 위해서도 좋다. 그것이 엔화 국제화의 원점이다.
〈정리·도쿄〓권순활특파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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