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올해 성탄절 메시지를 통해 지구상에서 사형제도를 조속히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지난 1세기 동안 신이 부여한 생명을 인위적으로 빼앗아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을 펼쳐왔다. 그러나 유럽의 많은 가톨릭국가들은 교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사형제도를 존속시켜 왔다.
이탈리아의 경우 독재자 무솔리니가 처형된 직후까지 사형제도가 남아있었으며 프랑스도 프랑수아 미테랑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야 사형제도가 폐지됐다.
교황의 메시지는 유럽보다는 다음달 방문하기로 돼 있는 미국을 겨냥한 것이다. 미국은 주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사형집행이 거의 일상화돼 있는 나라다.
교황은 내년 1월26일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을 만난다. 이 만남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클린턴대통령은 다른 민주당인사들과는 달리 사형제도 지지론자다. 92년 대통령선거 캠페인에서 자신이 주지사 시절 정신이상 중죄인에 대한 사형집행을 허가했다는 사실을 공표하기도 했다. 게다가 교황의 방문예정지인 미주리주나 텍사스주는 사형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다 주민들이 정기적인 사형집행의 효용성을 인정하는 지역이다.
이 때문에 교황이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치가들과 일반 시민들에게 사형제도의 대안을 찾아보라고 설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과거 교황의 미국방문이 미국사회에 성직자의 독신주의와 낙태 등 가톨릭 교리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것처럼 이번에도 사형제도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킬 것으로 예측된다.
〈정리·파리〓김세원특파원〉clai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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