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남은 얼굴]동생에 바친 「큰 오빠의 청춘」

  • 입력 1998년 12월 31일 18시 06분


[약력]

·63년 정읍 출생

·서울예전 문예창작과 졸

·소설집 ‘겨울우화’ ‘풍금이 있던 자리’ ‘깊은 슬픔’ ‘외딴 방’, 등 발표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현대문학상 만해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수상

큰오빠는 방문만 나서면 돈이 필요한 이 도시에서 낮에는 공무원, 밤에는 법대생으로 살고 있었다. 그 혼자라고 해도 힘겨웠을 여건에 대학생인 셋째 오빠와 여고생인 나까지 데리고서 비키니 옷장, 다리를 접는 상, 솥, 곤로, 보온 물통, 이런 것들과 함께 자취 살림을 하고 있는 터였다. 나는 일찍부터 내가 대학에 갈 처지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내 노트 여기저기엔 대학엘 가고 싶다는 낙서가 수두룩했다. 언젠가 내 부주의로 그 노트를 오빠 책상 위에 얹어 둔 채로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방이 하나뿐이어서 손 닿는대로 잠깐 내려놓은 것이 그렇게 되었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날 내게 큰오빠가 “너, 대학에, 대학에 그렇게 가고 싶으냐?”고 물었다. 대학엘 가고 싶다, 대학엘 가고 싶다 라고 써 있는 노트를 큰오빠가 읽어버린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 아니야, 아니라구, 아니라니까… 그랬다. 내 속마음을 들킨 것이 미안했다. 그밤, 내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리는 큰오빠의 외로운 등을 보고 있으려니 정말 너무나 미안했다. 나는 다짐이라도 하듯이 나 대학에 안가도 돼, 오빠, 진짜야… 또 그랬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상고에 다니고 있던 내게 오빠가 입시공부에 필요한 책을 사다주었다. 선택과목은 가정으로 하라고 했다. 큰오빠에게 책을 건네 받고 나는 꿈인가 생시인가, 이마에 열이 다 났다. 책을 받아들고 선 채로 오빠! 나, 정말 공부해도 돼? 몇번이나 물었다. 정말로 공부해도 되냐고.

그렇게 해서 나는 대학엘 진학했다. 거기에서 소설과 시를 만났고 스승들을 만났고 소설가가 되어야지 숨을 골랐다. 내가 그러는 동안 그는 방위생활을 하면서 가발을 쓰고 아르바이트로 수학선생을 했으며 공무원 생활을 청산한 퇴직금으로 아버지에게 소를 사 주고 리비아로 돈을 벌러 가기도 했다. 옛날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진짜 공부를 하고 싶어했던 사람은 큰오빠 자신이었다. 가난하면서 뼈대만 있는 집 장남으로 자라는 통에 그 자신의 꿈을 위해선 한번도 시간을 내주질 못했다. 청년시절부터 그에게는 늘 아래 동생들을 거두어야 하는 일이 코앞에 닥친 일로 쌓여 있었으니 그라고 왜 그런 처지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그는 우리를 저버리기엔 너무나 마음이 약했고 책임감은 강했다. 언젠가 회한처럼 큰오빠가 그랬다. 마음놓고 일년만 공부를 할 수 있었으면,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겠냐…. 그렇게 살아온 큰오빠와 내 나이 차가 겨우 여덟살이라는 것에 지금 나는 또 미안하다. 나는 도저히 그처럼 할 수 없었겠기에. 이제 큰오빠는 그런 과정들을 다 잊어버린 사람같이 고생이라고는 조금도 안해본 사람같이 희고 단정하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어쩌다 내가 오빠가 없었으면… 하고 옛 얘기를 꺼내려들면 큰 오빤 넌 참 기억력도 좋다, 면서 계면쩍어 한다. 큰오빠한텐 추억조차 못되고 다 잊힌 옛일들이 내겐 참 안 잊힌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큰오빠 말은 잘 듣는다. 뭐가 좀 이상한데? 싶어도 오빠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하면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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