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먹는 문제`와 `강성대국`

  • 입력 1999년 1월 2일 20시 06분


올해 북한 신년사를 보면 우려되는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북한 당국은 당보 군보 청년보 공동사설 형식의 신년사 표제를 ‘강성대국 건설’로 삼았다. 한쪽에선 주민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도 강성대국을 외치는 것은 무엇보다 국정의 우선순위가 잘못돼 있음을 보여준다. 정치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목적이 무엇인지 새삼스레 따져보아야 할 일이다. 식량난과 경제위기에도 변변한 대책을 수립하지 못하는 북한 당국이다. 그러면서 사회주의 사상강국, 군사강국, ‘우리식의 혁명방식’을 내세워서는 개선의 길이 눈에 보일 리가 없다.

실사구시로 경제를 살리려면 정치이데올로기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 세계사적 교훈이다. 경제를 일으키고 있는 중국의 경험이 좋은 예다. 그런데도 북한당국이 신년사를 통해 여전히 주체사상과 붉은 기, 선군(先軍) 혁명같은 구호를 외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물론 말로는 경제건설이 강성대국의 가장 중요한 과업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정치 사상 군사적 위력에 경제적 힘이 뒷받침돼야 목표에 도달한다고 한 것은 앞뒤가 바뀌었다고 아니할 수 없다. 이른바 ‘먹는 문제’가 기본이자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옳다.

북한 신년사는 97년을 ‘고난의 행군’으로, 98년을 ‘강행군의 해’로 정했으며 그 결과 정치사상적 순결성이 보장됐다고 평가했다. 북한식 사회주의가 지켜졌다는 자평이다. 지난해만 해도 외부로부터 1백90만t 이상의 식량을 무상 지원받고도 수많은 아사자를 발생시킨 것이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다. 올해도 북한의 식량 사정은 지난해와 비슷하다고 한다.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98년 식량생산이 97년보다 30% 늘었다지만 최소 소요량에 1백35만t이 모자란다. 북한이 부족분을 얼마나 사들일 자체능력을 가졌는지 미지수다.

북한이 막대한 금강산관광료를 챙기면서도 남한의 대북정책에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한 것도 자가당착이다. 북한은 남북한 당국간 대화를 도외시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는 남한 기업의 대규모 대북투자가 어렵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지난해 체제개편을 완료한 북한은 이제 국정정상화와 경제살리기 최우선의 길을 가야 마땅하다. 93년에 정지된 3차 경제개발 7개년계획도 이어가야 할 것이다. 1월18일로 예정된 4자회담과 그 전후 개최될 북―미(北―美)협상에서 과감하게 실리주의로 전환하면 길이 열릴 수 있다. 반대로 미국과 일본의 대북 강경여론을 불러 한반도 위기설을 고조시킬 경우 북한 경제난은 가중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중국 부흥의 지도자들이 실리추구의 전(專)과 이념에 집착하는 홍(紅)중에서 ‘전’을 선택한 결단을 북한 당국도 본받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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