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회 529호실 파란

  • 입력 1999년 1월 2일 20시 06분


새해 벽두부터 국회가 파란에 휩싸이며 국민에게 불안을 안겨주고 있다. 한 해를 힘겹게 보낸 국민이 새로운 각오를 다지며 새해를 맞으려던 시간에 의사당 529호실이 강제로 열렸고 여야는 팽팽한 정면대치를 계속하고 있다.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정치권과 관계당국은 되도록 빨리 사태를 사리에 맞게 처리해주기 바란다.

사건의 시말은 복잡하고 여야의 주장은 상치된다. 특히 529호실이 국회사무처의 설명대로 ‘정보위원회 자료열람실’인지, 한나라당의 주장처럼 ‘정치사찰을 위한 안기부 분실’로 악용됐는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한나라당이 정치사찰 의심을 앞세워 529호실에 강제진입했다는 사실이다. 이 사무실이 정보위와 함께 94년에 설치돼 96년과 지난해에 보수됐으며 적어도 정보위 여야의원들에게는 잘 알려진 곳이었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잘잘못의 소재와 사후처리의 방법을 가리는 일 또한 그리 어렵지 않다고 본다.

한나라당은 “안기부의 국회파괴행위를 막기 위해 의회주의자들이 선택한 최후의 불가피한 행동이었다”고 강제진입을 해명했다.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든 국회의장이나 사무처의 동의 없이 보도진의 접근까지 막은 채 의사당 사무실을 끌과 망치로 뜯고 비밀문서와 개인물품을 가져가 일부를 공개한 처사는 정당화될 수 없다. 그것은 의회주의와 국법질서를 외면하는 불법행동이다. 더구나 대법관 출신의 이회창(李會昌)총재가 진입을 진두지휘하고 ‘승리’ 운운한 것은 민망하다.

또 다른 문제는 정치사찰 시비에 있다. 안기부는 529호실에 “정보위원장에게 제공해온 정보보고서와 개인메모가 보관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메모의 어떤 내용은 안기부가 설명하는 문건의 성격을 넘어서는 것으로도 보인다. 이종찬 안기부장은 “사찰과 공작 등 정치개입을 철저히 배격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일부 메모는 정치개입의 오해를 낳을 소지가 많다. 과거부터 있었던 ‘통상적 업무’라는 여당의 해명도 설득력이 약하다. 과거부터 있었으니까 답습한다면 정권교체나 국정개혁이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정보위는 529호실의 성격을 명료하게 밝히고 악용소지가 있다면 폐지해야 한다. 여야가 상반된 주장을 계속하기보다는 보관문서를 공동조사해 최대한 공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안기부 역시 정치개입 배격의지가 추호라도 의심받지 않도록 충분한 조치를 취해야 옳다. 검찰은 강제진입 사건을 엄정하게 수사하고 한나라당은 이에 협조해야 마땅하다. 이번 일과 별도로 여야는 국회를 빨리 정상화해 밀린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 그러자면 우선 여당이 정치적 포용력과 유연성을 보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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