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임연철/종말론과 사과나무

  • 입력 1999년 1월 5일 19시 11분


1천년 전인 999년 유럽의 거의 전역에서 종말론을 믿는 사람들이 보였던 갖가지 현상에 대한 역사기록들은 다시 밀레니엄을 앞둔 현대인들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심판의 날’에 좋은 판결을 받기 위해 난데없이 관용을 베푸는가 하면 자포자기한 폭도들은 재물을 빼앗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교회와 성지 예루살렘은 기도자와 순례자들로 넘쳐났다고 한다.

▽1천년 전보다 심하진 않지만 1999년을 맞아 종말론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들고 있어 집단자살같은 참극 발생이 우려되고 있다는 보도다. ‘99년 지구의 종말’을 주장하는 광신도 14명을 구금했다는 이스라엘 경찰의 발표는 종말론자들의 심상찮은 움직임을 감지케 한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지구종말의 시점으로 예언한 1999년 제7의 달이 얼마 남지 않은 것도 종말론자들의 움직임을 더욱 주목하게 한다.

▽그러나 건전한 이성의 소유자라면 종말론에 크게 신경쓸 필요는 없어 보인다. 999년 12월31일 로마 베드로성당 미사에 참석한 신도들의 대부분도 종말을 믿었으나 자정을 지나서도 아무 일이 없자 교황 실베스테르 2세가 신도들을 축복했다는 기록이 있다. 몇년 전 휴거설이 퍼져 혹세무민하다 해프닝으로 끝났음을 상기할 필요도 있다.

▽기독교의 종말론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대체로 인간의 구원을 대망하는 신앙형태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교황청이 내년을 대희년(大禧年)으로 선포하고 대사(大赦)를 계획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스트라다무스보다 1백년 후에 활동한 철학자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다. 이 명언은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임연철〈논설위원〉ynch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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