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에서 뱃길로 3시간 거리인 월호도. 밝은 달빛이 비치는 호수같은 섬이라 ‘월호(月湖)’라는 이름이 붙었다.
1백1가구에 주민이 4백명도 채 안되는 이곳에 화태초등학교 월호분교가 자리잡고 있다. 학생이래야 34명이 전부.
하지만 이곳 섬마을 어린이들은 모두 ‘글짓기 선수’다. 지난 7개월동안 각종 글짓기 대회에서 31개의 상을 휩쓸었다.
성어기에 부모가 먼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가면 일주일씩 부모 얼굴을 못 보는 아이들도 많다. 큰 아이들은 동생의 밥은 물론 빨래까지 도맡는다. 그러나 아이들의 부모사랑은 애틋하기만 하다.
‘암소가 송아지를 낳으면/애지중지 여기는 것처럼/우리를 아껴주시네/…/나에게 꼭 필요한/책 같으신 분’(박사무엘·6년)
부모가 바다에 나가면 아이들은 파도를 벗 삼아 뛰논다.
‘큰 배가 오면 철썩철썩/작은 배가 오면 출렁출렁/물고기가 꿈틀거리면 반갑다고 하하하/파도속에 쓰레기를 버리면 아프다고 엉엉엉….’(황정하·4년).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크는 정민이와 슬기 남매. 남매의 꿈은 빚 때문에 헤어져 사는 부모가 하루빨리 섬에 돌아오는 것이다.
슬기는 “나도 다른 애들처럼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싶다”고 응석을 부리기도 하지만 아버지에겐 의젓하게 ‘힘내세요. 사랑해요’라는 편지를 쓴다.
섬마을 아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시인’‘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월호분교 이상인(李相寅·39) 임미리(林美里·37)교사 부부의 헌신적인 지도 덕분. 이교사는 92년 한국문학을 통해 등단, 지방의 동인지에서 활동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월호 아이들은/푸른 파도와 함께 살아간다/밀려오는 푸른 파도를 먹으며/저마다 하나씩의 파도를 타고 논다’(이교사의 시).
지난해 3월 부임한 이들 부부교사는 섬마을 어린이들에게 글짓기를 통해 꿈과 소망을 심어주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원고지 쓰는 법 조차 몰랐던 어린이들은 싫증을 내기 일쑤였고 학부모들도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서너달 지나 어느 정도 글쓰기의 기본을 가르쳤다고 생각한 부부교사는 아이들에게 각종 글짓기대회나 순회백일장에 작품을 응모하도록 했다. 육지에 나가기가 워낙 번거로워 주로 우편을 이용해 작품을 보냈다.
얼마 뒤 우체부 아저씨를 통해 배달되는 아이들의 상장과 상품들…. 자연스럽게 아이들 사이에 ‘작은 경쟁심’이 일면서 열의가 생겨났고 어느덧 상장이 교실 한쪽 벽을 가득 채우게 됐다. 아이들의 작품을 묶어 ‘나의 글 모음집’‘즐거운 독서편지’‘가족신문’ 등으로 엮어내기도 했다.
이들 부부교사는 방학에도 섬을 떠나지 않고 아이들의 글짓기를 지도하며 지낸다. 아이들은 하루종일 학교에서 살다시피 하고 툭하면 선생님께 달려와 궁금한 것을 묻는다. 2월말 이 섬을 떠나 새로운 임지로 가야할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걱정이다.
“아이들 생각은 바다와 같이 넓습니다. 그들에게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펴게 해주고 바다와 같은 너그러움과 인내심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이 큰 보람이죠.”
섬마을 교사부부는 오늘도 어린이들과 바닷가를 거닐며 싱싱한 ‘말’과 ‘글’을 건져낸다.
〈여수 월호도〓이철희기자〉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