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일만 쪽빛 겨울바다를 찬연히 물들이는 붉은 기운. 시시각각 그 색깔을 바꾸는 하늘의 조화는 인간의 상상을 뛰어 넘는다.
꿈틀대며 확장하는 빛 덩어리. 그리고 그 빛을 배경으로 입항 출어하는 고만고만한 어선들. ‘이 새벽 누군가의 그 역동적 삶’에서 분출되는 묵직한 힘에 자극 받아 불끈 주먹이 쥐어진다.
‘한반도는 연해주를 할퀴는 호랑이 모양’. 한반도를 호랑이가 연해주를 향해 발을 들어 할퀴는 모습으로 본 육당 최남선의 혜안은 지금도 돋보인다. 그 형국에서 경북 포항시 남구 대보면 구만리 일대 장기곶은 호랑이 꼬리 끝 부분이다.
곶 끄트머리에서 ‘두리번 두리번’ 거리던 등대의 불빛도 일출과 동시에 사라졌다. 90여년째 칠흙같은 영일만 앞바다의 밤을 지켜온 길라잡이, 장기곶등대다.
높이 26.4m의 장기곶 등대. 국내서 가장 높다. 오래기는 인천 월미도 등대 다음이다. 1903년 프랑스인의 설계 작품이다.
등대 옆에는 등대박물관이 있다. 한국의 등대 발전사 뿐 아니라 항만 해운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자료 7백여점이 바다가 내다 보이는 팔각형전시실에 즐비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은 휴관중. 새 전시관 신축공사로 내년 1월에야 다시 문을 연다고 한다.
장기곶에서는 바다를 벗삼아 자동차를 달려 보자. 대보·구룡포 해수욕장을 거쳐 구룡포항에 이르는 해안도로는 환상적인 드라이브코스다. 창을 열면 부서진 파도의 물보라가 후두둑 튀어들어 올듯 바다가 가깝다.
요즘 구룡포항에서는 구룡포의 명물 ‘과메기’가 제 철이다. 과메기는 한겨울 구룡포 바다에서 바람과 햇빛에 얼며 녹으며 꾸득꾸득하게 반쯤 마르며 발효된 꽁치다. 손으로 껍질을 벗기고 가시를 발라낸뒤 빨간 살덩이를 생미역에 둘둘 말아 초고추장에 ‘푹’ 찍어먹는 맛.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하다. 운전만 않는다면 소주 한잔을 걸쳐야 제격이다.
구룡포항은 경북해역 오징어잡이배의 전진기지다. 출어하는 어부의 힘찬 모습에서 겨울 한파도 잊는다. 싱싱한 횟감이 즐비한 어촌식당이 항구와 백사장 곳곳에 있다.
〈구룡포〓이명건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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