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가 승용차의 뒷문을 열어 주었다.
뒷자리에서 편안하게 주무시면서 가세요.
나는 호화주택을 구경하는 심정으로 대견하게 차 안을 둘러보았다. 조카가 시동을 걸고 교도소 앞 길을 빠져 나와 국도로 들어섰다. 국도에는 벌써 앞등을 켠 자동차들이 줄 지어 오가고 있었다. 차가 이렇게 많다니. 정근이는 뭔가 트랜지스터 모양의 물건을 꺼내더니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세요? 정근이에요. 네 삼촌 방금 나오셨어요. 지금 모시구 올라가는 길이에요. 그럼요 아주 건강하세요. 네 네 삼촌 바꿔 드릴게요.
그가 그 물건을 뒤로 넘겨 주었다.
나는 좀 켕겨서 그걸 받지 않으려고 두 손을 내저었다.
얘 이게 뭐냐?
핸드폰이요. 걱정마세요. 전화하구 똑같으니까.
핸드폰이란 물건을 넘겨받아 귀에 갖다대고 말을 건네보았다.
여, 여보세요….
오 현우냐. 얼마나 고생이 많았어. 그래 이게 얼마만이냐. 세상에 이럴 수가 있니? 너 정말 석방된 거야?
예 정근이 차 타구 가는 중이에요.
누님은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래 만나서 실컷 얘기하자. 어서 집으루 와.
예 그럼 이따가 봬요.
나는 그렇게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조카가 라디오를 틀었고 젊은 여자 아나운서의 명랑한 소개와 더불어 경음악이 흘러나왔다. 나는 아직 공간감이 회복되지 않아서 차창 밖을 내다보기가 점점 피곤해졌다.
여기서부터 넉넉잡고 세 시간은 걸릴 거예요. 오늘은 길이 나쁠테니까요.
차창에는 날아든 싸락눈이 부딪쳐 한편 녹고 흘러내리면서 아래 창 턱에 가느다란 켜를 이루고 있었다. 차가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오히려 귀가 차츰 멍멍해지더니 소음이 멀어져 갔다. 마치 나 혼자 깊은 산 속에 있고 저어 산 아래 아득하게 먼 곳에서 들려오는 먼 도시의 소리 같이 들렸다. 내 스스로 오랜 세월 동안 독방에서 지녀왔던 본능이 자기 방어를 하는 성 싶었다. 속도감도 길이 스쳐 지나갈뿐 내가 타고 있는 차가 앞으로 달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나는 까무룩하게 잠에 빠져들고 만다.
삼촌 일어나세요.
차가 서있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기 휴게소에서 잠깐 쉬었다 가시죠.
나는 조카의 옆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새벽부터 길을 가는 사람들로 가득찬 휴게소로 걸어갔다.
나 화장실 다녀와도 될까?
조카가 돌아보며 어이없이 웃었다.
그럼요, 삼촌은 이제 자유라구요.
나는 아직도 이 넓고 큰 공간을 막힘없이 걷는데 자신이 없었다. 내가 그냥 제 자리에 서버리자 조카는 눈치를 채고 내 손을 잡아 끌었다.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나서 손을 씻으려고 수도꼭지에 손을 댔을 때 나는 이런 모양의 기구를 한번도 사용해 본적이 없는 듯한 느낌을 받고 당황했다. 모든 사물이 낯설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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