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남영/대화않고 무슨 민주정치를

  • 입력 1999년 1월 7일 19시 43분


소위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지 벌써 1년이 다가온다. 지난 1년을 회고해볼 때 국민은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하에서 엄청난 고통을 감수해왔고 지금도 대다수의 국민은 불안과 초조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은 민생을 위한 생산성 있는 정치를 원하는 국민의 염원은 내팽개친 채 구태의연한 모습으로 서로 헐뜯고 비난하는 소모적 정치행각을 계속하고 있다.

▼여야 상호 존중해야

국민의 정부가 왜 법안을 단독 처리해야 하는지 의아스럽기만 하다. 여당의원들은 말한다. 민생을 위한 법안처리를 무작정 뒤로 미룰 수 없기 때문에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야당의원들은 말한다. 여권이 정치사찰 등 야당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려는 음모를 멈추지 않는 한 어떠한 법안처리에도 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견 양쪽의 주장은 모두 옳다. 그러나 서로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목소리만 있을 뿐 대화는 없어지고 만다. 정치란 무엇인가? 민주사회에서의 정치란 정권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당사자들이 직접 대화를 통해 국가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기술을 말한다. 여기에서의 대화란 국가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한다고 하면서 민주과정의 핵심인 대화의 기술을 아직 체득하고 있지 못하다.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을 존중해야 한다. 상대를 적대시하거나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대화의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무엇을 논의할 것인가를 분명히 정하지 않고서는 대화는 겉돌 수밖에 없다. 일단 대화가 시작되면 이견을 조정해 가는 지루한 과정에서 엄청난 인내심이 요구된다. 그리고 대화결과에 대해 대화당사자들이 신의를 지켜야 한다.

대화는 많을수록 좋다. 대화를 통해 서로 설득하며 설득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과정에서는 여야간에 대화의 통로도 많고 대화의 내용도 풍성하다. 국가가 당면한 문제를 놓고 여야간에 심도 있는 대화를 진행하는 선진민주국가의 의회와 몸싸움과 고함, 그리고 참담한 욕설이 오가는 우리의 국회를 비교해 보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창피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1년전 국민의 정부가 출범할 때 우리 국민은 정치가 하루아침에 달라질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민주주의를 향한 약간의 변화는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정치는 민주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과거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야당이 여당 되더니 과거 여당을 닮아가고, 여당이 야당 되더니 과거 야당을 닮아가고 있다. 그리고 국민의 정치불신과 정치소외는 더욱 깊어만 간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국민에게 절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국민 절망하게 말라

경제적인 고통은 참아낼 수 있지만 미래에 대한 절망감은 참아내기 힘들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국민은 정말 복이 없다. 정치인들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절망감만을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金大中)정권은 해결해야 할 일이 정말 산적해 있다. IMF경제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일, 과거 잘못된 정치관행을 고치는 일, 고착된 지역감정을 치유하는 일 등 숱한 과제를 안고 있다. 이같은 국가적 차원의 일들은 여당 단독으로는 결코 성공적으로 처리해 낼 수 없다. 즉 야당과의 대화와 타협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그것이 민주정치의 과정이기 때문이다.여당은 야당을 국정운영의 파트너로서 인식해야 하며 야당은 여당의 국정운영권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대화의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 대화의 기술이야말로 민주정치의 제도화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년 동안 사정정국, 총풍 세풍정국, 야당의원 빼가기, 국회 529호실 사건, 여당단독법안 처리 등으로 정치권은 극한 대립양상을 보여왔다. 그리고 경제청문회 내각제개헌문제 등 정치적으로 더욱 미묘하고 어려운 상황이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정국이 엄청나게 시끄러워질 것 같다.

이제 여야 모두 대화를 통한 민주정치를 포기할 것인지, 차분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최소한 국가적인 문제에 대해 여야간에 진지한 대화가 필요하다. 여야간의 대화가 없는 한국정치는 불구(不具)의 민주정치이기 때문이다.

이남영(숙명여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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