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영훈/거부권 「없던 일」로

  • 입력 1999년 1월 12일 19시 18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2일 국무회의에서 정해주 국무조정실장으로부터 변질된 규제개혁법안에 대해 보고받은 뒤 다음주 국무회의 때까지 재개정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김대통령이 박태준(朴泰俊)자민련총재와 만난 자리에서 변질된 규제개혁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말한 것은 지난 8일. 나흘만에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발언은 ‘없던 일’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같은 결론은 거부권을 행사할경우규제개혁자체가 지연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김대통령은 “변질된 것이 많아서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말했으나 생각해보니 보고대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거부권 행사에도 문제점이 있지만 재입법의 경우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뻔히 재개정안이 제출될 법안을 공포함으로써 빚어지는 혼란과 법적 안정성 침해 등도 가볍지 않은 문제다.

이 때문에 김대통령의 선택은 다분히 정치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을 낳고 있다. 여대야소 국회에서 여당이 변칙처리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자가당착(自家撞着)이라며 야당이 물고늘어질 경우 여권은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다.

특히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규제개혁법안 변질에 책임있는 일부 장관을 문책하지 않고 넘어가기가 어렵다는 점도 감안됐다는 전언이다. 정부의 고위관계자는 “책임을 묻지 않기가 어려운데 공동정권하에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규제개혁위와 법제처 등 관련공무원들은 며칠간 노심초사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와 함께 로비의 주역이었던 이익단체나 공무원들도 다른 의미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최영훈<정치부>c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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