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대통령(DJ)이 듣기 싫어하는 말은 무엇일까. 김대통령은 6일 수석비서관들과 점심을 함께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YS개혁과의 비교 ▼
“나는 가장 불유쾌한 것이 대통령 혼자 뛴다는 말이다. 물론 혼자 하지도 않았고 혼자 할 수도 없다. 총리 각료 등 모든 분이 성심성의껏 일했다. …대통령 혼자 한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싫어한다. 정부가 다 잘해서 대통령이 잘한다는 평가를 받도록 해야 한다.”
‘혼자 뛴다’는 말이 그토록 듣기 싫은 것은 잘못 짚은 말이기 때문일 수도, 아픈 곳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김대통령의 발언을 음미해보면 아픈 곳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그런데 청와대 사람들에 따르면 김대통령이 듣기 싫어하는 말은 또 있는 것 같다. 자신을 김영삼전대통령(YS)과 비교하는 말이다. 비교될 수 없기 때문일 수도,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물론 두 사람은 다른 점이 훨씬 많다. 그러나 비슷한 구석도 적지 않다.
개혁도 그렇다. YS개혁과 DJ개혁은 중점과 방식이 다르다. YS는 군부와 공직사회를 포함한 정치분야 개혁에 역점을 두었다. 경제개혁은 중도포기했다. DJ는 경제개혁에 주력해 왔다. 정치개혁은 시작도 하지 못했다. 방식에서도 YS는 전격적이었지만 DJ는 집요하다.
DJ개혁과 YS개혁은 유사점도 있다. 특히 개혁의 환경과 어려움이 닮았다. 97년 6월에 발표된 경희대 이영조교수의 논문 ‘김영삼정부 개혁정치의 딜레마’는 DJ개혁에도 적용될 수 있다. DJ집권 2년째인 올해가 ‘개혁정착의 해’라면 더욱 그렇다. 개혁의 정착은 시작보다 더 어렵기 때문이다.
이 논문이 지적한 YS개혁의 딜레마 가운데 DJ개혁에도 해당될 만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입양아 딜레마’. YS는 민자당에 입양돼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내부 이질성은 개혁의 입안 집행 정당성에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 이질성을 줄이려고 결행한 김종필씨(JP) 축출은 여당을 약화시켰다. DJ개혁은 JP와의 ‘동거 딜레마’를 안고 있다. 내각제가 걸린 올해는 이 딜레마의 중대 기로다.
둘째는 ‘파급의 딜레마’. 개혁이 확산되면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사정(司正)대상이 됐다. 다른 사람들마저 자기도 사정대상이 되리라 생각해 개혁에 저항감을 갖게 됐다. 이렇게 되면 개혁이 성공적이어도 반대가 늘어난다.
셋째는 ‘수단성(手段性)의 딜레마’. 개혁은 국민의 기대수준을 급속히 고조시킨다. 개혁에 대한 기대는 정권에 대한 지지를 높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개혁정부에 부담이 된다. 일단 성취된 개혁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같은 수준의 지지를 얻으려면 더 큰 실적이 요구된다.
개혁의 일반적 어려움도 YS와 DJ에게 공통될 수 있다. 첫째는 ‘양면전(兩面戰)의 문제’. 개혁은 필연적으로 보수세력과 급진세력의 협공을 받는다. 보수세력에는 개혁이 지나치게 급진적으로 비친다. 급진세력에는 너무 미지근하게 보인다. 개혁가는 두 전선에서 동시에 싸워야 한다. 한 전선에서의 적(敵)을 다른 전선에서는 동지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집단행동의 문제’. 개혁으로 혜택을 보게 될 다수의 사람들이 개혁의 적극적 지지자일 것 같지만 사실은 미온적 지지자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개혁에 무임승차하려 든다.기득권층의 보복을 각오하면서까지 적극적 지지에 나설 이유가 없다.
▼정교한 전략-전술을 ▼
셋째는 ‘집행자의 문제’. 많은 경우에 개혁은 개혁대상이 될 수도 있는 사람들, 특히 기존 관료조직을 통해 집행될 수밖에 없다. 적잖은 관료들은 자기도 개혁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는다. 그래서 복지부동한다.
개혁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정교한 전략과 전술이 동시에 필요하다. 미국 하버드대 새뮤얼 헌팅턴교수는 점진전략과 전격전술의 결합을 제안했다. DJ개혁 1년은 상당한 성과와는 별도로 전략과 전술의 결합에서는 깔끔하지 못했다.
이낙연<논설위원>nakyon@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