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단에는 유난히 실향민 화가가 많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도 상당수다. 이들의 작품에는 공통된 주제가 있다. 고향, 어린 시절, 가족 등이 그것이다. 이런 주제에 집착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고향에 갈 수 없는 한(恨) 때문이리라. 작가 이문열(李文烈)씨는 이와 반대로 부친의 월북으로 이산가족이 된 경우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영웅시대’ ‘변경’같은 작품을 쓰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이씨가 최근 생존사실이 확인된 북녘의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에게도 부친을 만나게 해달라고 호소하는 편지를 썼다. 담담하게 써내려 간 내용이지만 이산가족 모두의 심금을 울리는 편지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씨는 가족의 생사조차 모르는 다른 이산가족과 비교할 때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일지 모른다.
▽이산가족 문제는 이제 절박한 과제다. 고령에 접어든 이들의 나이 때문이다. 당국자들도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겠지만 이산가족 입장에서는 아무리 기다려도 진전이 없으니 그 피맺힌 한을 어찌할 것인가. 이 와중에 북한이 거액의 달러를 받고 이산가족을 만나게 해준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런 식으로 처리할 문제는 결코 아니다. 이씨의 편지가 이산가족 상봉의 막힌 길을 뚫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홍찬식 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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