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던 해 초봄에 그 어른을 처음 뵈었다. 그 큰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시며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잘 부탁해요” 하셨고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아무튼 나는 그분의 부탁을 받은 셈이었고 비서로서의 내 일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말하자면 우리 회장님은 시속 2백㎞ 이상을 달리는 최고 성능의 자동차이다. 그 스피드를 따라가기란 보통 일이 아니다.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여 초긴장 상태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긴장감이라니…. 나는 그 긴장의 상황을 즐겼던 것 같다. 정신은 맑고 몸은 가벼웠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관계없이 나는 그분이 어렵거나 무섭지는 않았다. 어떤 일이 주어지던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호출 벨이 울리면 우리는 0.1초내로 즉각 달려 들어가야 한다. 지시는 언제나 한두마디이다.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끝장이다. 당시 현대에는 정씨 성을 가진 중역이 여러분 계셨다. 앞뒤 설명도 없이 정사장 또는 정상무라고 지시하시면 누구를 부르시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임무의 흐름과 상황을 분석해서 결정해야 하는데 맞을 확률은 사실 70%도 안된다. 도저히 자신이 없을 때는 꾸중들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다시 여쭤보아야 한다.
회장님의 꾸중은 폭풍우와도 같다. 한번 맞으면 혼이 다 나가서 정신을 수습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믿지 않는 사람은 그 꾸중의 대상에도 들지 못한다. 한번 믿으시면 인정사정없이 일을 던지고 꾸중은 대부분 격려의 뜻이며 방향제시의 방법이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이 무한하다는 확신 위에서 출발한 그분 나름의 경영철학이며 그분 나름의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는 사회생활의 첫 걸음에서 그토록 훌륭한 선생님을 만났고 다양한 일을 통해 훈련도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이 내겐 정말 큰 공부였다.
김혜경(출판인)
▼약력
·53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영어교육과 졸업
·현대건설 비서실, 아산재단 근무
·도서출판 ‘푸른숲’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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