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강원룡 방송개혁위원장

  • 입력 1999년 1월 19일 07시 26분


《“방송이 바로 돼야 국민이 바로 되고, 국민이 바로 돼야 나라가 바로 선다.” 올해 나이 여든 둘의 강원용(姜元龍)목사. 난마(亂麻)처럼 얽혀 있는 우리나라 방송의 개혁문제를 떠맡아 힘들어 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시원시원했다. 가야할 방향이 분명했고 소신이 뚜렷했다.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효자동의 방송개혁위 사무실을 찾아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 공익성 강화를

위한 그의 ‘방송개혁’ 청사진을 들었다.》

―방송개혁위의 활동시한이 2월28일까지입니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논의해야 할 안건이 70여건이나 돼 시간이 촉박합니다. 그래서 활동시한을 연장해야 한다는 말들도 하지만 저는 그때까지 끝을 맺을 계획입니다. 그 이후까지 가야한다면 위원장직을 내던질 생각입니다.”

―한나라당은 방송개혁위에 불참하고 있지요.

“그 사람들의 논리는 한나라당이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았는데 왜 또 국회밖에서 논의하느냐는 겁니다. 그러나 정부 여당주도의 위원회에 참석하기 싫다는 정치적 계산도 있겠지요. 개인적으로 접촉을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방송委 구성 여야案 문제―가장 큰 쟁점이 무엇입니까?

“방송위원회의 위원구성 문제에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민회의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7명과 국회에서 추천하는 7명으로 14명의 위원을 두자고 주장하고 있고 한나라당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3명과 국회추천 6명, 모두 9명으로 구성할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두 안이 다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여당안대로 하면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이 최소한 10명이상 되니까 형평성의 문제가 있고, 야당안은 국회추천 위원이 너무 많습니다. 국회추천으로 나온 사람들은 그 정당의 이익을 대변하려 합니다. 좋은 방송을 만들기 위한 논의를 해야 하는데 국회에서 싸우는 식으로 방송위원회가 운영돼서야 되겠습니까. 저는 방송위원장이 3명은 추천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1공영 多민영’ 바람직 ―대통령이 임명한 방송위원장이 정권과 가까운 사람들을 방송위원으로 임명하면 어떡합니까.

“프랑스의 미테랑대통령이 당시 방송위원장을 임명했는데 그 방송위원장이 미테랑대통령이 추천한 방송사 사장의 인준을 거부했습니다. 그 위원장은 ‘방송위원장을 임명하는 것은 대통령의 결정사항이고 방송사 사장을 인준하는 것은 내 권한’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방송의 문제들이 생겨난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원인은 간단합니다. 일제시대 총독부가 처음으로 서울중앙라디오 방송을 설립할 때부터 ‘국민의 알권리’보다는 ‘동조동근(同祖同根)’ ‘내선일체(內鮮一體)’의 사상을 주입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5·16이후 방송은 국가홍보와 반공사상을 키우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이용됐습니다. 민주화운동이 진행되고 방송의 영역이 세계화되는 시대에 이르러서도 모든 권한을 정부가 쥐고 있는 방송의 구조는 결코 바뀌지 않았습니다. 90년대 이후에는 방송사 내부 노사갈등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제 정치적 입김을 포함해 방송사 내외부의 어떠한 압력에서도 벗어나 진정 국민을 위한 방송으로 거듭나야할 때입니다.”

―방송의 공영성은 어떻게 확보할 계획입니까.

“공영이면 공영, 민영이면 민영방송이 돼야 합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방송은 있을 수 없습니다. 공영방송의 가장 큰 특징은 시청률 경쟁을 하지 않는 겁니다.”

―KBS 2TV의 정체성을 놓고 말이 많습니다.

“공영방송이라지만 KBS 2TV를 보면 상업방송인 SBS와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공영방송을 하려면 분명히 공영방송을 하고 그렇지 않으려면 민영방송을 하든지 해야 합니다. 이번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MBC는 어떤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다고 보십니까.

“아직 정해진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MBC의 정체성을 바로잡는 일은 중요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1공영 다민영’방송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5·16재단이후 정리되지 않은 주식소유형태도 정리돼야 합니다.”

―최근 SBS가 장외주식시장에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데 현재의 법으로는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그 문제에 대해서도 심도있는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제가 방송위원장으로 있을 때 SBS가 탄생했는데 지배주의 비율문제로 정부 부처와 다툰 적이 있습니다. 정부는 지배주의 비율을 49%로 하자고 했어요. 제가 반대했습니다. 선진국의 경우 6%정도 이거든요. 논란 끝에 30%가 됐습니다만. 지배주는 인정하지만 어느 정도의 객관적인 조치는 필요하다고 봅니다.”방송마다 정체성 찾아야 ―KBS의 방만한 운영이 그동안 문제가 돼 왔습니다.

“혹자는 방송사 구조조정이 공영성과 직결된다는 말을 하던데 조직이나 인력의 구조조정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으로 공영성을 강화하자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합니다. ‘국민을 위한 방송’을 위해서는 하드웨어의 정비보다는 소프트웨어인 프로그램의 질이 개선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진국에서는 외주제작체제가 거의 완벽하게 구축돼 있지요. 프랑스가 대표적인데 그곳 기간 방송사 프로그램이라고는 뉴스밖에 없습니다. 나머지 프로그램은 수많은 외주프로덕션이 만들고 있죠. 물론 이러한 선진모형이 우리나라에 곧바로 적용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이해합니다. 지금 방송3사에서 나오는 이와 관련된 불만이 ‘이유없는 불만’은 아니지요. 하지만 2001년이면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으로 디지털방송이 시작됩니다. 그러려면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어림없어요. 어쨌든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고 개혁은 해야된다고 봅니다.”

―KBS시청료 인상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시청료를 올리는 데는 조건이 있습니다. 일단 공영방송다운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시청료를 올려달라고 해야 합니다.”

―방송에 대한 바람은 무엇입니까.

“저는 일단 각각의 방송이 정체성을 확보했으면 합니다. 지금은 공영 민영 가릴 것 없이 다 똑같죠. 영국의 채널4를 보면 시청률은 매우 낮지만 다양하고 풍부한 프로그램을 공급합니다. 방송은 국민의 다양한 욕구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모두 겹치기입니다.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국민의 정신적인 양식이 되도록 해야합니다. 제가 이러한 취지로 ‘방송이 불량식품이 돼서야 되겠는가’라고 했더니 이 말이 와전돼 ‘방송 불량식품론’이 나왔는데 현재의 방송이 모두 불량식품이라는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공익성이 아직 미흡하다는 얘기지요.”

―언론사의 보도채널을 금지시키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뉴스 공급원을 다양화해 경쟁을 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방송사마다 각자의 특성과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재로선 KBS와 MBC의 구조를 개선하고 SBS 지방네트워크를 다양화하는 등 제도개혁을 통해 공정 공영성을 확보하는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중계유선 제도권화 필요―중계유선TV와 케이블TV사업자간의 갈등은 어떻게 해결할 계획입니까.

“어떻게 탄생했건 이미 생겨난 것이니 통합을 하든지 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케이블TV는 1, 2채널만 장사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반면 케이블TV보다 먼저 시작한 중계유선은 회원이 더 많습니다. 통합문제는 내후년 디지털화사업 때 본격 논의해야 하겠지만 우선은 중계유선TV를 제도권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강위원장은 KBS자문위원장 방송윤리위원장 방송위원장 등을 역임해 누구보다도 방송계 사정에 밝다. 노익장(老益壯)을 과시하는 그는 ‘특별한 비법이 없는 것이 건강비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방송개혁’의 비법은 나올 것 같은 기대를 갖게 했다.

〈정리〓전승훈·이승헌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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