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대응 한미 시각차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를 선언해 영변핵시설 사찰문제가 세계적 관심사가 됐던 93년11월.워싱턴에서 열린 김영삼(金泳三)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간의 정상회담에서 희한한 합의문안이 나왔다. ‘TB(Thorough and Broad)해법’이란 합의다. 우리말로는 ‘철저하고 광범위한’ 해법으로 표현됐다. 철저한 남북한 상호사찰을 주장한 김대통령과 포괄적 해법을 제시한 클린턴대통령의 입장이 맞서다 절충선에서 급조된 표현이었다.당초30분으로 예정됐던 이날 회담은 80분동안 계속됐다.
그로부터 1년후인 94년12월 북한핵에 관한 북―미제네바합의서가 체결되는 과정에서 ‘사전에 긴밀한 협의를 한다’는 명분만 있었을 뿐 한국은 협상테이블에서 제외되는 황당함을 겪었다. 이때부터 한국은 뒷전으로 밀렸고 미국과의 의견조율은 대북정책추진의 우선과제가 됐다. 본선에 나가기도 전 예선에서 파김치가 되는 형국이 돼버린 것이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임을 자임하는 미국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북한핵과 미사일을 국제적인 틀에서 접근하려는 데 비해 이를 일차적으로 한반도문제로 보려는 한국의 입장은 전략적 시각차를 나타낸다. 지난해 여름 미첩보위성에 포착돼 최대 현안이 된 금창리 지하핵의혹시설에 대해선 전술적 판단의 차이가 드러난다. 미국은 △제네바합의의 틀속에 포함시켜야 하고 △5년후 완공되면 제거에 따르는 위험이 더 크다는 입장인데 비해 한국은 △북한이 제네바합의에서 뛰쳐나가 영변핵처리시설을 재가동하면 불과 5주내에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제네바합의와 분리해야 하고 △완공하기까지 소요되는 5년 동안 시간을 갖고 협상을 계속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미국이 기본적으로 포용정책(Engagement Policy)에서 대적 개념을 내세우는 데 비해 한국이 공식적으로는 언급하지 않지만 동족의 입장에서 접근하려는 분위기는 역사적 문화적 인식의 차이로 볼 수 있다. 국제적인 비판여론속에서도 이라크를 크루즈미사일로 후려치는 미국의 람보기질을 볼 때 의견차이는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의견조정에서 우리의 급박한 형편을 어떻게 납득시키느냐에 있다. 태평양 건너가 아니라 미국의 코앞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도 미국은 강공할 것인지를 따져야 한다. 민족의 운명이 걸린 문제를 놓고 우리가 왜 뒷전에 서야만 하는가, 언제까지 예선전 의견조율에만 매달려야 할 것인가.
이제 한국민의 소리를 좀 더 크게 전달할 수 있는 새 패러다임의 구축이 필요한 때다. 미국과 빅딜을 벌이자. 빅딜의 전제는 ‘대북협상의 한반도화’다. 대북협상에서 우리가 다시 주도적 입장에 서자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만의 생각이 아니다. 제임스 릴리 전주한미대사는 한 기고(98년11월9일자 뉴스위크지)에서 대북협상에서 나타난 미행정부의 미숙함을 지적하면서 북한을 더 잘알고 경험을 축적해온 한국이 협상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햇볕정책의 추진을 위해서도 협상주도권이 절실하다. 남북간에 할말 못할말 다 털어놓을수 있어야 오해와 오산, 그리고 위기설도 줄일 수 있는 것 아닌가. 빅딜에서는 북―미제네바합의와 4자회담의 틀안에서 양국간 정책과 역할의 분담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 협상주도권 되찾아야
이제 어떻게 한국의 논리를 명쾌하게 세우고, 얼마나 집요하게 미국측을 설득하겠느냐고 안보외교당국자들에게 묻고 싶다. 사정이 급한데도 실상은 뒷북만 치는 모습이니 불안하다. 4자회담대표외에 윌리엄 페리전국방장관(그는 94년6월 제2한국전 위기때의 국방장관이다)을 대북정책조정역으로 내세운 미국을 보면 우리 일인데도 우리가 얼마나 소극적인지 드러난다. IMF한파를 이겨내려고 힘겹게 쌓아온 모든 노력이 단 한번 몰아치는 안보태풍에 몽땅 날아가 버릴 수 있다. 올해의 화두는 안보다.
최규철〈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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