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어른의 모범된 어린이

  • 입력 1999년 1월 20일 19시 14분


어린 아이의 티없이 맑은 눈을 보면 성선설(性善說)을 믿지 않을 수 없다. 어릴 때의 그 착한 심성은 자라면서 차츰 바뀌어 간다. 왜 그럴까. 미국의 여덟살짜리 한 초등학생이 클린턴대통령의 탄핵문제와 관련해 하원 법사위원장에게 보낸 편지에 그 해답이 들어 있다. 결국 어른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거짓말한 대통령에게 반성문을 쓰게 하라는 편지내용은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더욱 뼈아프게 느껴지는 것은 학생의 아버지가 붙인 추신이다.

▽아버지가 거짓말한 아들을 야단치려고 하자 아들은 “대통령이 거짓말을 하는데 나는 왜 안되느냐”고 항변했다고 한다. 아버지로서, 어른으로서 그는 할 말을 잃었을 것이다. 마침 서울에서는 같은 나이의 초등학생이 차에 치일 뻔한 동생을 구한 뒤 생명을 잃은 사건이 있었다. 동생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에서 비롯된 본능적 행동이었을지 모른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어른이었다면 과연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궁금하다.

▽어린이에게 모범이 되는 진정한 ‘어른’을 찾기 힘든 세상이다. 우리의 경우 ‘생존’의 명분으로 최소한의 윤리와 도덕조차 저버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자녀교육도 마찬가지다.‘밖에서 맞고 들어오지 말고 차라리 남을 때리고 들어오라’고 가르친다. 이런 살벌한 어른 밑에서 청소년이 올곧게 자라기를 기대할 수 없다.

▽선진국에서는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데 IQ(지능지수) EQ(감성지수)말고도 MQ(도덕지수)를 따지는 경향이 늘고 있다. 윤리교육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인본주의적 가치를 동반하지 않는 지식은 세상을 냉혹하게 만들 뿐이라는 반성에서 시작된 움직임이다. 책장 깊숙이 들어 있던 도덕책이 다시 각광을 받는 것이다. 대통령을 꾸짖는 어린 학생의 편지는 도덕의 필요성을 실감하기에 충분하다.

홍찬식<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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