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도 않고 김지영(金志英·21·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은 말한다. 얼핏 봐도 외모에서부터 사람을 압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키가 헌칠하지도, 깎아낸듯한 미모를 가진 것도 아니다.
그런 그가 15일 문화훈장 화관장의 영예를 안았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파트너 김용걸(金容傑·25)과 함께 지난해 11월 파리 국제콩쿠르에서 2인무부문 대상을 수상한 공로 덕분.
이보다 앞서 6월에는 미국 잭슨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했다. 러시아 모스크바, 불가리아의 바르나를 포함,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세계 4대 발레콩쿠르 중 두개의 고지를 점령한 것.
“유럽지역 발레는 점점 남녀의 성격묘사에 소홀해지는 것 같아요. 거기에 비해 용걸오빠는 남성적인 힘을, 저는 여성스러움을 충분히 표현해냈고 그 점이 심사위원들에 어필했다고 봐요.”
78년 7월생 서울나기. 어릴 때 부터 샘이 많았다. 열살 때 하루는 친구가 발레를 배운다며 뽐을 냈다. 당장에 “나도 발레할래!”라고 선언했다.
“발레를 본 적도 없었어요. 운명이었나봐요. 피아노부터 태권도까지, 남이 한다는 건 다 배워보았지만 몇달 계속 한 것이 없었죠. 그런데 발레는 달랐어요. 재미있더라구요.”
지금에야 ‘단점이 없다’며 태평하지만 당시는 단점투성이였다. 키도 작은 꼬마가 다리는 굽어, 남들이 가관이라고 했다. 그런 김지영이 오늘날의 프리마 발레리나로 성장할 수 있던 것은 자신을 발레로 끌어들인 그 ‘샘’이었다.
예원학교 3학년때 러시아로 떠났다.세계 발레스타의 산실로 불리는 바가노바 발레학교에 입학했다. 헌칠한 체격과 지칠줄 모르는 체력을 가진 이방의 어린 천재들과의 만남은 충격이었다. “이제부터로구나” 김지영은 이를 악물었다.
“스스로 게을러졌다고 생각할 때, 나약한 생각이 들 때 가장 화가 나요. 라이벌요? 발레는 어디까지나 자신과의 싸움이예요. 옆에 있는 사람 말고 자신을 계속 생각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96년 바가노바의 졸업공연이 열렸다. 그런데 슬픈 영화에서나 등장할 수 있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부모님과 어머니 친구분들이 보러 오셨어요. 공연 사흘째 되던날 어머니가 객석에서 쓰러지셨어요.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죠….”
초등학교 중학교때는 자신이 연습을 하든 안하든 말없이 지켜보던 어머니였다. 유별난 딸의 욕심이 언젠가 일을 낼 것으로 확신하는 듯 했다. 어머니는 딸인 자신도 모르게 유학의 길을 완벽하게 준비해두었다. 그런 어머니였기에 황망히 보내는 아픔도 컸다. “많이 힘들었어요. 반년쯤 연습도 못하고….”
97년 그는 역대 최연소로 국립발레단에 입단, 그해 세계적 발레리나 강수진과 함께 ‘노트르담의 꼽추’주역인 에스메랄다 역으로 캐스팅됐다. 입단 새 얼굴에게 갈채가 쏟아졌다. 이집트 이스라엘에서 공연된 ‘돈키호테’, 이어 ‘신데렐라’에서도 주연을 맡아 스타 대열에 올랐다.
“지영씨는 테크닉의 센스가 뛰어납니다. 또 어떤 역할을 주어도 끊임없이 연구해 표현하죠. 지금까지는 테크닉을 자랑하는데 적합한 배역들이 주어졌지만 2, 3년안에 ‘백조의 호수’‘지젤’등 더욱 예술성 깊은 작품의 프리마 발레리나로 성장할 겁니다.”
국립발레단 최태지(崔泰枝)단장의 평. 그의 말처럼 앞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김지영의 모습은 지금까지보다 훨씬 깊고 다채로울 것이다.
‘현역’으로서 발레리나의 수명은 보통 40세 안팎. 김지영 자신도 40세 즈음까지는 활동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019년 그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너무 멋지겠죠. 세계적 스타가 되어있을 거에요.”
이번에도 그는 웃지 않았다.
“낙관적이라구요? 한가지에 온 정신을 집중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낙관적이 아니라면 ‘미칠’수도 있지요. 운명요? 믿어요. 가끔 빙 돌아서 갈 때도 있지만 결국 목표에 도달할 거라고 생각해요.”
◇ 프로필 ◇
▽탄생〓78년 7월 26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차병원서
▽신체조건〓165㎝ 45㎏
▽혈액형〓AB “천재 아니면 바보라고 하던데….”
▽가족관계〓아버지 언니 오빠. 본인은 막내동이
▽존경하는 사람〓“대답하기 힘든데요, 대신 좋아하는 사람을 물어봐 주세요.”
▽좋아하는 사람〓박찬호. “웬일인지 글쎄, 꿈에 애인으로 나왔어요.”
▽이성상〓‘필링’이 통하는 남자. 여자같은 남자나 남성우월주의자는 사양.
▽취미〓영화보기. “조용한 멜러물이 좋고 액션은 싫어요. 그래서 미국영화보다 한국영화를 많이 보게 돼요. 최근 ‘약속’ ‘미술관옆 동물원’을 재미있게 보았어요.”
▽좋아하는 노래〓요즘은 ‘더 헤븐’. “최신곡이 좋아요.”
▽적합한 배역〓“모든 배역에 관심이 있지만 ‘돈키호테’의 키트리 역처럼 강한 캐릭터를 연기할 때 더 신이 나요.”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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