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투명한 정치 보고싶다

  • 입력 1999년 1월 21일 19시 30분


정국이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혼란스럽다. 판을 읽을 수가 없다. 정리되고 풀리는 것은 하나도 없고 날로 얽히고 꼬여만 가는 인상이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정파마다 내는 소리가 제각각이다. 그마저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다. 국민이 혼란스러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파들 스스로도 앞뒤를 잘 가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다.

우선 내각제문제가 그렇다. 개헌은 나라와 정치의 기본틀을 바꾸는 중차대한 일이다. 헌법이 정한 권력구조를 바꿔야 할 이유와 명분, 절차와 과정을 국민이 환히 알아야 하고 정치권은 국민에게 분명하게 알릴 의무가 있다. 바꾸기로 했다가 다시 바꾸지 않기로 한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두루뭉수리로 지금은 때가 아니다고 불쑥 연기론을 제기했다가 반발이 튀어나오면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는 식이어서는 안된다. 당당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당당하게 당과 국민을 설득해야 옳다. 그래야 정치가 투명해진다.

그런데도 지금 여권은 이를 ‘고의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내각제 합의 당사자인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독대(獨對)도 궁금증만 부풀릴 뿐 속시원한 발표가 없다. 이미 두 당사자의 속셈은 대부분 드러났는데도 선문답(禪問答)으로 불확실성을 부추기면서 국민으로 하여금 말의 ‘행간’을 해독(解讀)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물론 타협은 밀실에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는 투명하게 공표하고 성의있게 설득해야 한다. 내각제를 ‘두 당사자가 해결하라’는 주문에는 그런 뜻이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밀실만 있고 설명이 없다면 민주정치가 아니다. 국민을 얕보는 처사다.

치고 빠지는 식의 ‘게릴라정치’로는 대통령과 총리가 합의했다는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없다. 정치는 예측가능해야 한다. 정치가 이면에서만 맴돌면 경제도 사회도 혼란을 벗어나기 어렵다. 내각제문제와 표리를 이루는 정계개편론이나 합당론 시비도 마찬가지다. 밑도 끝도 없이 설만 난무하면서 세상을 어지럽혀서는 안된다.

지금 정치가 할 일은 태산같다. ‘당신들이 정쟁으로 밤을 지새우는 동안 세계는 번개처럼 변하고 있다’는 외국인들의 핀잔을 정치인들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 ‘전라도에는 실업자가 없다’느니 ‘구미 공장을 뜯어다가 광주에 짓고 있다’느니 하는 충격적인 유언비어가 왜 영남지역에서 나돌고 있는가를 심각하게 살펴야 한다. 그런 것들을 푸는 것이 정치다.

정치가 밀실에 숨어 권력놀음에 빠지면 유언비어는 더 창궐한다. 정치가 안개 속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래야 경제와 사회가 제자리를 잡는다. 그 책임은 일차적으로 국민회의와 대통령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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