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반병희/『주인 잘못 만난탓에…』

  • 입력 1999년 1월 26일 07시 41분


26일 경제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하는 강경식(姜慶植)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이 작년초 환란발생 뒤에 썼다는 일기가 화제다. 꼼꼼한 메모습관에 해박한 경제 지식과 정연한 논리로 소문난 그의 일기는 사실(史實) 규명 차원에서도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낳았다.

그러나 컴퓨터 디스켓에 쏟아놓은 억지 변명과 윗사람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은 ‘그가 정말로 한 나라의 경제운용을 책임진 경제팀장이었나’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

그는 우선 자신을 ‘주인을 잘못 만난 불운한 개혁주의자’라고 규정했다. 97년 11월 환란발생 직전까지 정책의 선후(先後)를 가리지 못하고 외곬으로 시도했던 자기류의 금융개혁에 대한 비난여론을 의식한 듯한 표현이다. 대통령과 정치권이 자신을 믿고 자신이 추진하려 한 방식의 금융개혁만 지지해줬더라면 경제위기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을 깔고 있다.

그는 심지어 “왜 그런 사람(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을 지칭)과 인연을 맺었는지 후회만 쌓일 뿐” “치유불능의 사람”이라는 등의 말을 서슴지 않았다.

자신을 믿고 경제운용 전반을 맡긴 대통령에 대해 죄스러워 하는 자세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직 자신이 살기 위해 경제에 무지했던 대통령에게 모든 잘못을 떠넘기는 강변이다. 부실기업 처리와 환율정책의 실패, 경제위기 상황에 대한 오판과 위기관리 실패 등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후회하는 고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도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는 4천5백만 국민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조차 없다.

가능한 한 인맥을 최대한 동원해 결백을 주장하겠다는 일념만이 넘쳐흐르는 그의 일기를 접하면서 ‘국가경영엔 역시 인사가 만사’라는 생각이 스친다. 그의 일기 자체가 역설적으로 역사의 교훈이 됨직하다.

반병희<경제부>bbhe4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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