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용래/지역감정 없애려면…

  • 입력 1999년 1월 27일 19시 07분


최근 영남권을 중심으로 한 지역차별과 지역감정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특히 24일 한나라당의 마산집회를 전후하여 이 문제는 정치권을 들끓게 하고 있다.

현정부 출범이후 정부 여당에서는 정부의 인사행정이나 예산배정에 있어서 지역차별이 없다는 것을 통계숫자를 들어 해명하여 왔으나 지역감정은 누그러들지 않고 증폭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급기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26일 국무회의에서 전국무위원이 나서 범정부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을 강력히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정치제도와 국민행태

차제에 우리는 정부나 정부산하단체의 인사운영과 정부투자재원의 지역간 배분의 공정성 확보라든가 대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기업합병을 둘러싼 그릇된 정보나 유언비어를 바로잡기 위한 국민홍보 강화 또는 지역감정을 조장 선동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등과 같은 응급적 대증적 처방을 우선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이와 병행하여 지역간 갈등과 지역감정 문제가 발생하게 된 근본적 원인을 생각해보고 발본적 해결 방안의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본다.

일부에선 우리나라의 지역갈등의 연원을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찾기도 하지만 우리 시대에 있어서 지역감정이 결정적으로 고조된 것은 박정희(朴正熙)후보와 김대중 후보의 득표가 극명한 동서양분 현상으로 드러난 1971년의 대통령 선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 이후의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러한 현상은 지속되었다.

그러므로 지역갈등 격화의 제1차적 원인은 우리나라의 정치제도와 우리 국민의 정치행태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지역갈등 해소에 대한 해답도 정치개혁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지역할거주의 정치구조를 개편하고 ‘지역 허물기’정치개편을 하루빨리 서둘러야 한다. 예를 들면 1선거구에서 1인만을 뽑는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 아래에서는 지역별 싹쓸이 현상을 막을 수가 없다.

정부요직을 비롯한 인사등용의 불균형 역시 오랜 장기집권에서 빚어진 지역편중의 대표적 현상이다. 과거정권에서 인사상 기득권을 누려온 쪽에선 현정권출범이후 호남인사의 등용이 두드러진다해서 불만이고 반면 다른 쪽에선 과거의 잘못된 인사관행을 바로잡아 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같은 갈등을 없애기 위해 앞으로 인사는 기회균등과 공정경쟁의 원리를 철저히 적용하는 제도개선이 시급하다.

지역감정해소를 위해선 이제까지의 거점개발방식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다극형(多極型)균형개발전략으로의 국토개발전략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난 30여년간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특정지역 거점 개발전략을 추진하여 온 결과 지역간의 개발격차가 심해지고 저개발 지역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심화돼왔기 때문이다.

▼행정구역 개편 해볼만

우리나라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근본적 원인은 뭐니뭐니해도 우리 국민의 오랜 행동습성인 이른바 연줄 인맥주의와 사정(私情)우선주의적 의식구조에 있다고 하겠다. 여기에 역대 정치권력이 가세하여 지역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이러한 폐해를 없애기 위한 국민의 의식구조개혁은 하루아침에, 또 어느 한가지 처방만으로 효과를 볼 수도 없다. 역사적 안목으로 인내와 성의를 가지고 다각적인 처방과 노력으로 차근차근 풀어갈 수 밖에 없다.

이 기회에 한가지 제언하고 싶은 것은 갑오경장(1894년)때 개편된 13도 제도를 1백여년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현행 시도(市道)행정구역의 경계를 허무는 문제다.만일 경제권 개발권 생활권을 중심으로 새로운 행정구역을 설정하고 명칭을 바꾼다면 수백년 동안 지속된 아무개는 어느 도 출신이라는 식의 지역적 연고 정서도 감소될 것으로 본다.

당면한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고 21세기를 준비하는 새로운 국가경영 패러다임을 짜고 있는 현시점에서 지역갈등문제가 다시 부상되는 것은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심각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이 문제해결을 위하여 다각적인 정책과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며 정치인들은 지역감정을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온 국민이 지혜를 모아 이 문제 해결에 각자의 분야에서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김용래(전 서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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