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검찰총장의 분노

  • 입력 1999년 1월 27일 19시 30분


김태정(金泰政)검찰총장의 ‘방탄 국회’ 비난 발언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발언은 대전 법조비리사건 처리방향에 대한 기자간담회에서 돌출됐다는 점에서 배경과 의도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나 국회가 비리의원들의 피난처가 돼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공감하고도 남는다. 특히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이 무슨 뇌물면허장이냐”는 항변은 의원들의 그릇된 사고방식의 정곡을 찌른 것이다. 불체포특권은 어디까지나 국민대표로서의 의정수행을 위한 것이지 개인적 신변보호용이 아니다.

검찰은 그동안 비리정치인 수사에 나름대로 의욕을 보여왔다. 그러나 번번이 방탄용 임시국회 소집으로 닭 쫓던 뭐가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된 것이 다반사였다. 이번에도 국회의 비협조로 비리의원 10명을 무더기로 불구속기소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검찰의 반발은 충분히 이해된다. 구속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검찰로서는 형평성 문제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 여러 정치적 사건 수사에서 보여온 검찰의 자세에도 문제는 있다. 그럼에도 검찰총장의 발언내용은 국회가 반성의 자료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검찰총장의 표현방식, 대전사건과 관련된 검찰의 입장 등에 비추어 볼 때 그 발언이 신중했느냐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체포동의안 처리요구에 대한 국회의장의 공한에 할 말이 있다면 정중한 형식을 취해야 옳을 것이다. 국회의장의 공한은 법무부장관이 보낸 체포동의안 처리요구서에 대한 답변서였다. 기자간담회라는 자리에서 “밥인지 죽인지 알 수 없다”는 표현으로 이를 공박한 것은 국회의 존엄성을 훼손한 처사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검찰이 철저히 경계해야 할 정치적 행위로 비칠 수도 있다.

그의 발언은 책임전가적 성격도 띠고 있다. 검찰권 독립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책임이 마치 국회에 있는 양 호도한 인상이다. 검찰이 오늘날 이런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은 검찰 자신의 탓이 크다. 어쩌면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도 있다. 검찰이 흐트러짐 없이 공명정대한 자세로 검찰권을 행사해 왔다면 국회가 피난처 역할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대전사건 수사와 관련해 재수사하라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연유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검찰은 정치적 발언을 최대한 자제해야 옳다. 정치적 주장은 검찰권 독립에 자승자박의 결과를 가져오기 쉽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대전사건만 보더라도 검찰이 국회에 대고 볼멘소리를 할 명분이 없다. 검찰의 메시지는 이 사건의 철저한 수사와 엄정한 처리에서 읽힐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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