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규민/서울시의 除雪행정

  • 입력 1999년 1월 29일 18시 55분


미국에서 눈이 많은 뉴잉글랜드지방과 콜로라도주 같은 곳에서는 시장선거 때 가장 인기있는 공약이 ‘완벽한 제설작업’이다. 약속대로 이들 지역에서는 눈이 갑자기 많이 와도 간선도로는 물론 집앞 골목까지 신통할 정도로 삽시간에 치워진다. 뉴욕시에 눈이 내리면 제설현장에 항상 앞장서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 루돌프 줄리아니시장이다. 뉴욕시민들은 그의 현장행정 투지를 재선(再選)이란 선물로 격려했다.

▽예고없던 28일 심야의 기습폭설로 서울시민의 귀가길은 아수라장이 됐다. 무악재고개를 넘고 한강다리 하나 건너기 위해 빙판길을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했다. 새벽 두세시에 겨우 집에 들어가 잠시 눈붙이고 출근할 때는 더 큰 혼란이 기다리고 있었다. 흡사 서울시를 대상으로 비상 제설훈련이라도 실시한 듯한 8.5㎝의 적설량에 이 나라 수도는 완전히 공황에 빠졌다.

▽서울시장이 그 혼란의 시간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시민들은 모른다. 1만5천여명의 인력과 2백여대의 제설차를 동원했다고는 하지만 눈을 치우는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비리사건 때는 그렇게 흔하더니만 제설작업 때는 보이지 않는 것이 서울시 직원들이었다. 눈 잘 치우는 구청에 주려고 18억원의 보너스 예산을 준비했는데 눈이 안와 걱정이라고 너스레를 떨던 서울시의 탁상행정에 시민의 분노가 쌓인다.

▽기상예보도 문제다. 라니냐 영향으로 맹추위가 예상된다고 했다가 슬며시 꽁무니를 빼는 바람에 얼마나 많은 겨울산업이 멍들었던가.

불과 몇시간 전의 예보가 “청명할 것”이었으니 이번 폭설에 가장 놀란 쪽은 혹 기상청이 아니었을까. 눈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1시간10분이 지나서야 대설주의보를 내리는 수준이라면 ‘슈퍼컴퓨터가 없어서’라는 변명도 이제는 군색하게만 들릴 뿐이다.

이규민<논설위원>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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